수첩속 거짓말

사막여우

야가다 2023. 5. 23. 19:21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 쯤인가.

나와 10여년이 된 친구 M은 갑작스레 인도로 두 달 정도 여행을 갔다온 적이 있었다. 나도 그 때 그 M과 함께 인도에 가보고 싶었으나 아직 난 졸업을 위해 봐야 할 시험이 몇 개 더 있었고, 취업 준비에 바빴으며, 학기 중 펑크낸 학점을 메우기 위해 계절 수업을 들어야 했고,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으므로 가질 못했다.

당시에 주로 내 일과는 이랬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차가운 물로 눈꼽을 데고, 솔이 다 풀어진 칫솔로 이를 닦은 다음, 티셔츠를 뒤집어 입고 지하철을 두시간 타고 학교에 가서 고전 9시에 있는 3시간 짜리 강의를 듣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영어 공부와 졸업시험 공부를 하고, 오후 4시쯤엔 밤 12시까지 편의점에 서서 담배 박스 옆의 바코드를 쉴 새 없이 찍어대고, 12시쯤엔 진열대에 비워진 상품을 원래대로 다시 채워놓은 다음에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이 잠에 드는 것을 반복했었다.

주말엔 수업을 듣지 않는 대신에 오전엔 아이들 집에 찾아가서 과외를 했다. 과외를 하는 대부분 가정은 집에 돈이나 시간이 썩어날 듯이 많았지만, 그런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줄 모르거나, 스스로 해야할 의지를 잃은 아이들이 있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난 돈을 위해 비록 부모는 원하지만 당사자인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내 지식을 팔며 그렇게 주말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마치 앞으로 가기 싫어하는 소를 질질 끌고 가는 것과 비슷했다. 소들은 자신들이 가고 싶어하지 않는 길은 아무리 애를 쓰며 앞에서 뚜레를 끌고 가려해도 절대 앞으로 가지 않는다. 그럴 땐 앞에서 질질 끄는 것보다 소를 앞으로 가게하는 보다 현명한 방법이 있느넫, 바로 소의 꼬리를 뒤로 잡아 당기는 것이다. 그렇게 소의 꼬리를 잡아당기면 소는 보이지 않는 뒤를 경계해 되려 앞으로 향하게 된다고. 물론 맞으면 즉사할 수도 있는 소의 뒷발질을 조심한다면 말이다.

물론 나는 도시에서만 자랐기 때문에 이런 것이 실제로 적용 되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저 막연하게 책에서 본 지식과 그냥 그러지 않을까라는 내 경험적 추론으로 생각하는 것 뿐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소의 꼬리를 잡아당기는 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하곤 했는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그 땐 그랬다. 하루하루 빌어먹는데에 정신 없었고, 결정되지 않은 불안한 미래 덕분에 한 달간의 여행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래, 잘 갔다와. 소매치기 조심하고.."

"어. 전에 인도 많이 가봤다는 사람이 동행이니까 괜찮을꺼야."

"뭐 별 일 있겠어? 올 때 기념품으로 열쇠고리나 하나 사다주라."

"미친놈, 왠 열쇠고리? 살 여유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인도로 여행을 떠났고, 정확히 두달 뒤 약속한 날짜, 약속한 시간에 그 친구는 돌아왔다. 물론 M은 틱틱 거리긴 했지만 내가 부탁한 선물을 사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M은 원래 그런 친구였다.

M이 사온 열쇠고리는 카마수트라의 그림을 따온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의 조악한 열쇠고리였는데, 남녀 다리 부분에 삐져나온 막대기를 조작하면 남녀 모형이 후배위 성행위를 하는 듯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 대는 그런 물건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기괴했지만 보고 있으면 유쾌해지는 물건, 난 그 열쇠고리에 달린 막대로 반복적으로 성행위 동작을 조작하며, 그 M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딱 니 취향일 것 같았어."

그리고 M은 반년정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인도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 친구는 세헤라자드인 것 마냥, 그리고 마치 내가 그 목숨을 쥐고 있는 술탄인 것 마냥, M은 자신이 인도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내 주었다.

뭐 그 중엔 흥미를 끄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천일야화가 그렇듯 대부분은 재미없고 그저 당사자들에게만 흥미있는 그런 이야기 였다. 아마 내가 세헤라자드의 목숨을 쥐고 있는 술탄이라면 천일씩이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진 않았을텐데.

아마 그 술탄은 세헤라자드의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천일 씩이나 들어준 것은 핑계였을 것이다. 천 일이라는 시간동안 세헤라자드의 이야기와 말소리가 익숙해지고 아마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려 잘라내기 힘들어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길들임.

이야기가 재밌기 보다는 세헤라자드는 그 천일간의 이야기를 통해 술탄을 길들여가 결국은 자기를 죽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아마도. 아닐 수도 있고. 정말 미모가 뛰어났거나, 천일간의 시간을 통해 여자에 대해 믿음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술탄이 하룻밤을 지낸 여성을 죽였던 것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니까.

그 M에게 들었던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사막에 관한 것이었다. M은 인도 여행중에 사막에서 하룻밤을 머문 적이 있었는데, 언제 모래속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전갈의 공포와 밥이 기본적으로 모래에 섞여있어 뭘 먹어도 서걱서걱하다던 이야기.

그 기억이 친구가 직접 겪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M에게 매우 공포스런 이야기며, 생생한 기억들이었을테지만, 내게 있어서 그것이 큰 의미가 될리는 없었다. 단지 그 사막에서는 지금 밤하늘에서 사라진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보인다는 점과, 끝없이 아름다운 모래가 펼쳐져 있다는 점이 내 흥미를 끌었다.

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을 본 게 대체 언제였던가? 내 기억 속에 꽤 많은 별을 본 마지막 기억은 실제 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아니라, 천문관에서 인공적으로 빛을 스크린에 띄워 비춘 가짜 별, 가짜 하늘이었다. 실제로 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자격 미달의 하늘, 별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내 기억에서 본 하늘의 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막이 모래와 지옥같은 더위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가 사막의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 했는데, 나에겐 그 아름다운 이유는 조금 다르다. 모두에게 어떤 소중한 물건의 이유는 각각 다르듯이, 내게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사막 어딘가에는 반드시 그 어린왕자를 길들인 사막여우가 존재하고, 밤 하늘에는 어린왕자가 돌아간 그 소혹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어린왕자 이야기를 좋아한다.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막여우의 길들임에 관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아홉살 무렵,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고 눈물을 흘린 이후부터, 가장 사랑하는 이야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그 어린왕자의 사막여우 이야기 구절을 꼽을 것이다.

비록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서로에게 길들여져 지금 어느 순간에도 해질 노을 녘 황금 들판을 바라보며 어린왕자를 떠올리고 슬퍼할 사막여우가 이 죽음같은 사막 어디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사막은 아름답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렇지만 말이다.

사막 여우가 말했던 것처럼 결국은 나도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 길들임의 의미를 잊곤 한다.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고 길들여간다는 것은 꽤나 인내심과 많은 시간, 노력이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그 의미보다는 결과, 목적에 많은 의미를 두게 되어가고, 그렇게 점점 고립되어 간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M도 더 이상 인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난 그 동안 적당히 취직을 했고, M은 천안에 취직을 했다. M과는 이제 1년에 한두번 보는 그런 사이가 되었고, 만나면 인도나 사막 이야기 대신에 야구나 선거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1승을 더 올리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선거에 당선되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우리는 만나면 그런 이야기들로 밤을 세웠고, 그렇지만 그럴수록 M과의 우정은 오히려 소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M은 직장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일년에 한두번 만나던 횟수도 더욱 줄어 일년동안 일과 가족 외에는 전혀 만나는 사람이 없게 되어버렸다.

M과 멀어진다고 해서 딱히 인생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 길들임의 괒어이 있듯이, 친구의 헤어짐 역시 그와 마찬가지다. 멀어짐을 길들여가면 그 역시 길들여지는 것이다. 우정이 삶의 일부가 되었듯, 우정이 아는 것도 삶의 일부가 된다.

적다가 문득 생각난 건데 우정의 반댓말이 대체 뭘까? 우정이 아닌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단이 과연 없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이 도시라는 것이 사막과 다른게 뭘까? 콘크리트로 덮힌 땅은 물을 머금지 못하고 공기에선 서걱거리는 먼지가 느껴진다. 아 하지만 밤 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사막보다 상태는 더욱 좋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거리엔 내게 모래알과 의미가 다름없는 사막의 모래 알 수와 같은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그 어떤 의미를 가지지도 못하고 주변을 공기처럼 흘러갈 뿐이다. 만약 진짜 사막이었더라면, 낮엔 지옥같은 열기를 참아내더라도 밤엔 밤하늘을 보며 어린왕자가 있는 별을 찾는다던가, 혹은 별들의 반짝임이나 움직임을 관찰하며 쓸데없는 공상이라도 할 터인데, 이 사막보다 못한 도시에선 그마저도 없다.

막혀버린 하늘엔 별 빛 대신에 네온과 같은 찬란한 빛이 별빛의 몇천배 밝기로 반짝이고 있었고, 거기엔 어떤 상상이나 의미를 확장해 나갈 여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매일매일 한 낮 사막의 열기처럼 숨을 죄어오는 회색 하늘과 굉음을 내는 쇳덩이를 보며 출근을 했고, 가짜 별 빛들을 보며 퇴근을 했다.

그렇게 나 역시 이 사막에서 하나의 모래가 되어갔으며, 나만의 사막여우를 만난 것은 그런 모래로의 퇴화가 완성되어 가던 그런 시점이었다.

도시에서 사막여우라니, 이 글을 누가 읽을지는 모르지만,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만약 사막여우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면 도시 여우라고 불러도 좋다. 아니 그것도 그거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좀 부끄럽다.

그 여우는 어린왕자가 다가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먼저 말을 걸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이 들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호기심 많고 커다란 갈색의 두 눈과 부드럽게 쓰다듬어 싶어지는 포근해보이는 하얀 털, 작고 귀여운 몸집, 새침한 그 표정은 아마 누구라도 매혹되어 먼저 다가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그 여우에게 다가서고 싶었지만 난 그러지 않아싿. 거의 모래로 퇴화되고 있긴 했지만 아직 길들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고, 서로 친해진다는 것, 길들여진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어린왕자에 나오진 않지만, 사막여우는 본래 무리지어 생활하는 동물이다. 그네들은 항상 무리지어 먹고, 사냥하고, 잠을 잤으며, 비록 같은 종이라도 다른 집단과는 맹렬하게 싸웠다. 즉 사막여우에게서 무리란 건 매우 중요한 의미이며, 사막여우가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떨어져있다는 것은 무언가 일상적이지 않고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말한다.

난 여우와 길들여지려 노력했다. 매일매일 여우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 이상은 다가서지 않으려 노력했다. 급하게 다가선다면, 오히려 여우는 경계하기 때문에 계획보다 가까워지게 된다면, 더 다가서기 보다는 좀 더 멀어지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여우가 나를 길가의 나무나 굴러다니는 돌처럼 의식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난 여우에게 조금 더 다가가 이야기를 했다.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여우는 친구가 되고 싶다는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아니 받아들인 듯 했다. 비록 먹는 먹이는 다르지만, 여우와 같이 나는 무언가를 먹으려 노력했고, 작은 시간이라도 함께 있으며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다. 그리고 여우에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우는 남쪽의 먼 도시에서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왔다고 했다. 그 남쪽의 도시엔 원래 가족의 무리도 있었고, 친구들의 무리도 있었지만, 어느날 가족과 친구들 모두 자신을 공격하고 무리에서 내쫓았다고 했다. 자신은 그 무리의 소속감이 그리우며, 하루 빨리 자기도 자신만의 무리를 갖고 싶다고 했다.

난 그 여우에게 도시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고립감을 이야기 했고, M과 멀어진 이야기도 조금 했으며, 나 역시 무리가 없어 자신의 위치나 인생의 방향설정, 자아의 확립이 어렵다고 이야기 했다. 진짜 자기 자신이란 자기 안에 존재하는 것인지, 날 알고 있는 타인에게 존재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고 했으며, 만약 자아의 존재라는 것이 후자라면, 나란 존재는 이 도시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 했다.

여우는 나의 고민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이야기 했다. 결국 나의 고민은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공백과 같다고 했다. 나는 이무것도 길들이지 못하고, 길들여지지 않음에, 여우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여우는 자신이 길들이고, 길들여진 모든 것과 작별하고 이 곳에 왔다며 모든 것을 새롭게 길들이는 지금이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고 이야기하며 날 위로했다. 나 역시 여우에게 지금의 혼란은 이겨낼 수 있다며, 언젠간 모두 환하게 빛나게 될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여우와 서로를 위로할 수록 이 여우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단순히 동정심이라고 해도 좋다.

한가지 확실했던 건 이 여우와 함께라면 이 사막에서 다른 어떠한 장미와도 다르게, 단 한 송이의 소혹성에 핀 장미와 같은 의미가 내게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고, 사막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음을 상상하며 사막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처럼, 이 도시를, 그리고 그 여우를 생각하는 내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의 끝 어딘가 쯤에 삶을 돌이켜보며, 그래, 내 삶엔 여우가 있었어.. 라는 것처럼

 

"여우야. 난 너가 좋아져 버렸어. 너 때문에 세상 모든 것이 황금빛으로 보여. 너의 털 색깔 말이야. 어딜가도 이제 무엇을 하더라도 너의 흔적을 찾게 되어버렸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노오란 해를 바라볼 때에도, 저녁 놀의 노란 빛을 볼 때에도 모든 순간이 너가 떠올라서 견딜 수 없게 되었지 뭐야. 너와 내가 다른 종이란 건 알아. 너와 나는 영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그렇지만 잠깐의 너와 함께한 순간으로 인해 난 앞으로 너를 생각하며 영원히 남은 삶이 빛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우는 어색하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큰일이네요... 그거."

여우는 예의 아름다운 황금빛 꼬리를 보이며 나에게서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 황금빛 꼬리는 내게 여러 이야기를 전하는 듯 했고, 그 꼬리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자 모든게 끝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 어쩌면 그 여우를 쫓아가서 좀 더 간절하게 말을 했어야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기적이게도 난 내 마음을 일방적으로 전한 것만으로도 내 삶에 조금은 살짝 반짝이는 순간이 생겼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버렸다.

다시 밤하늘에 별도 없는 모래뿐인 사막같은 도시에 덩그러니 혼자인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