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새벽의 카운터란 시차만 적응한다면 최고의 아르바이트다. 오다니는 손님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취객이거나 아래층 노래방에서 일하는 도우미정도? 그외에는 가끔 손님에게 커피를 전달하는 것과 새벽에 1시간정도 청소하는 것 외에는 앉아있는 11시간동안은 그냥 내 볼일을 보면 되는 것이다.
새벽에 내가 카운터에 앉아있으면서 하는 일은 신문을 본다던가 컴퓨터로 프리스타일을 한다던가 이 두가지이다. 그러나 신문의 모든 꼭지를 읽어버리고 토할정도로 지겹게 프리스타일을 해버린 날이면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거나 한다.
책은 주로 끝없이 많은 여러 단편을 엮은 두꺼운 단편집 따위를 읽곤하는데 굳이 장편을 읽지 않는 이유는 특별히 없지만 중간에 끊기는 느낌이 싫어 단편을 읽었다.
단편소설의 작가중에는 쥐스킨트를 제일 좋아한다. 쥐스킨트의 단편에는 사람들은 잘 찾아내질 못하지만 중간중간 숨겨져있는 슬픔이 있고 외로움이 있으며 광기가 있다. 물론 이 느낌을 남에게 전달하기는 매우 쉽지 않다. 뜨거운 녹차처럼 쥐스킨트의 광기와 슬픔은 읽고 난 다음에 자리에 누워 잠이 들기전 찾아오는 기분 좋은 쓰디씀이었다.
오늘도 역시 쥐스킨트의 <비둘기>를 읽고 있었다. 난 여러편을 읽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소설은 자꾸 반복해서 보는 편이다. 시간은 1시를 약간 넘어가고 있었고 카운터에서 내가 틀어놓은 듀란듀란과 에어컨 소리 외에는 매장은 조용했다.
듀란듀란의 와일드 보이즈가 슬슬 지겨워 시바사키 코우로 바꿀려고 할 때 즈음 입구의 자동문이 스르르 열리고 왠 여자손님이 들어왔다. 면소재의 츄리닝에 뒤로 머리를 대충 묶은 것으로 보아 아마 프린트 몇장을 하러 온 것 같았다.
"어서오세요."
책에서 시선을 몇초간 떼어 그 손님을 바라보며 인사한뒤 다시 읽던 부분을 읽었다. 엉덩이는 의자에서 떼지도 않았다.
"네, 저기요."
그 여자손님은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귀찮았다.
"네, 말씀하세요."
시선은 여전히 책을 향하고 있었다. 누구의 말대로 난 너무 불친절하다.
"회원번호를 잊어버렸는데 좀 알려주세요."
난 그제서야 책에서 시선을 여자손님쪽으로 옮긴다.
"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오지혜요."
"오지혜씨요?"
"네."
컴퓨터로 회원관리 탭에 들어가 오지혜란 이름으로 검색해본다. 그녀의 회원번호는 3500번이다.
"네 손님 회원번호는 3500번 입니다."
그렇지만 오지혜라고 자신을 밝힌 손님은 자리에 앉질 않는다.
"무슨 아직 볼일 남으셨어요?"
난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 손님에게 물었다.
"저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고 그렇게 회원번호를 막 알려줘도 돼요? 제가 오지혜라는 사람이 아닐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택택 거리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 짜증나게. 기껏해야 게임방 회원번호 알아봤자 뭐에 쓴단 말인가?
"네, 제가 깜빡했네요. 손님 그럼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그 손님은 뾰루퉁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준다. 85년 11월 27일생.
"맞죠?"
그리곤 지갑을 뺏듯이 가져가 종종 걸음으로 금연석쪽에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는다.
뭐 새벽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이기에 난 개의치 않고 다시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쥐스킨트 단편집의 최대의 단점은 책이 너무 얇다는데 있다. 1시간도 되기 전에 모두 다 읽어버릴 정도의 분량은 너무 절망적이다. 별 할일 없어진 나는 다시 프리스타일을 시작했다. 내 캐릭은 레벨 17의 슈팅가드. 슈팅가드지만 3점슛은 커녕 미들, 골밑 아무것도 들어가질 않는다. 이렇게 슛을 해도 들어가지 않을꺼라면 왜 '슈팅'가드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뭐 그래도 패스는 되니까. 내 존재가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계산해주세요."
게임을 하다가 누군가의 말소리에 고개를 모니터에서 떼 앞을 바라봤더니 그 여자손님이 계산을 해 달라한다. 20분도 채 하지 않은듯 했다.
"네. 천원입니다."
"...머리가..."
난 가는귀가 어두웠다.
"네? 모기요?"
내 엉뚱한 소리에 그 여자손님은 피식 웃어버린다.
"아뇨. 모기 말구 머리요. 머리가 많이 길었다구요."
"아...네..."
난 여자의 머리 길이에 별로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앞의 여자손님의 머리가 그리 길어보이진 않았다. 뭐 본인이 길다고 느끼면 긴거니까 취향은 각자 나름이다.
그 손님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며 말을 잇는다. 그 여자손님의 목소리는 조용조용했고 왠지 차분했다.
"있잖아요. 이번 여름이요.... 모기 없지 않아요?"
"네, 그렇네요."
난 건성으로 대답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번 여름처럼 모기가 없던 적은 없는거 같아요. 그렇치 않아요?"
나처럼 뜯어진 모기장을 창에 사는 사람은 예외다.
"그렇네요."
"올해들어 모기에 물려본적 있으세요? 전 별로 없는거 같은데..."
그 여자 손님은 뭔가 내게 동의를 구하고 싶었던거 같다. 그렇지만 낸 피곤했고 누군가의 얘기에 맞장구를 계속 쳐줄만큼 그리 성격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난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이런 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에 나보다 4살어린 여자와 기껏해야 모기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머리 있잖아요... 뭐 그리 길어보이진 않네요. 그 정도면 괜찮네요."
그 여자손님은 피식 웃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뇨. 저말구요. 당신."
"네?"
"당신 머리가 많이 길었다구요."
예상외의 대답에 약간 당황해하고 있는틈을 타 그녀는 무언가 쪽지를 내게 쥐어주고,
"그 쪽지 아무데나 두지마요."
그리곤 스르르 열리는 자동문으로 나가버린다.
난 어안이 벙벙해져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일단 카운터 컴퓨터를 정산하고 조금 차근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그다지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타잎은 아니었다. 키는 170정도로 작았고 얼굴도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거기에 운동을 안해 배도 나왔고 옷도 그다지 유행을 쫓아가는 편도 아니었다.
쉽게말해 처음보는 여자가 내게 말을 걸고 쪽지를 주고 갈만한 그런 외모는 아니란 이야기였다. 물론 내가 그동안 머리가 길었다는 이야기로 보아 아주 처음보는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기억에 없으니 그다지 나와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째서 그녀는 내게 쪽지를 주고 갔을까?
난 조금더 상황을 명확히 판단하기 위해서 그 쪽지를 열어보았다. 그 쪽지엔 010으로 시작되는 8자리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이것은 당연히 이 번호로 전화하라는 의미겠지?
왜 나한테?
전화하면 무슨 이야길 하지?
난 전화하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조금 생각해 봤다.
'전 고등어를 좋아합니다. 특히 소금에 약간 절여 연탄불에 구운 고등어를요. 특히 껍질을 바삭바삭하게 구운것을 좋아하지요. 바삭바삭한 껍질은 물론 약간 탄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지 않을지 몰라요. 그래요. 안좋아요. 그렇지만요 이 껍질의 바삭바삭함이 고등어의 생명일지도 모른답니다. 그래서 이 바삭바삭함이 없다면 전 고등어를 먹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해요. 뭐라구요? 그럼 고등어의 껍질만 벗겨 먹으라구요? 네.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껍질만 있는 고등어가 있다면 어떨까라구요. 그렇지만 그런 고등어가 있을리가 없잖아요? 좋든 싫든 전 껍질과 살을 둘다 먹지 않으면 안되요. 그리고 그 살 때문에 껍질의 바삭함이 의미가 있는거에요. 살이 없다면 껍질이 바삭하든 물렁하든 의미가 없는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 바삭한 껍질의 고등어를 좋아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물렁한 껍질의 물렁한 살의 고등어 구이는 좋아하지 않는 거라구요. '
물론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전화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2시 반을 조금 넘은 즈음이었다. 전화기를 집에 두고 왔기에 공중전화로 가 100원짜리를 2개 넣고 쪽지를 보고 차근히 번호를 하나씩 하나씩 신중하게 그러나 지긋이 누른다.
그 11자리 번호를 다 누를때 쯤 내 긴장은 무게를 더 해간다. 달각하고 전화기에서 동전이 넘어간 소리가 난 다음, 그녀의 컬러링이 멜로디와 함께 나를 맞이했다.
'퍼덕퍼덕, 당신은 낚였습니다. 퍼덕퍼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