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님
오늘 삼일만에 밖에 나왔는데 평소와 같이 어둡고 음산하고 쓸쓸해야 할 밤이 왠 걸? 거리가 화사하고 비록 바람은 찼지만 거리는 따뜻해 보이는게 평소완 다른거야.
왜일까 하고 군자교 위에서 난간을 잡고 중랑천을 내려다 봤더니 보름달이 물 한가운데에 빠져있는거 아냐? 난 그 매혹적인 모습에 놀라서 군자교 밑을 내려가 그 달 모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했지.
"달님 달님 물속에서 오밤중에 춥지 않으셔요?"
하고 난 물속 달님에게 말을 걸었어. 하지만 달님은 좀처럼 대답을 않는거야. 난 처음엔 대답을 하지 않더라도 좋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달님과 나는 물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그저 처음엔 나혼자 그 달님에게 대답없는 말을 건네고 좋아라했드랬지. 그런데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물속의 달님은 어그러지고 보이질 않게 된거야. 당황한 난 그 달님 찾아 군자교 주변 달님이 숨을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녀봤지만 도통 나타나지가 않더구나.
난 다시 달님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상심하고 다시 군자교로 오르려는데, 아뿔사, 그 달님이 강물에 떠 있는 것보다 환하고 어여쁜 자태로 하늘에 떠 있는게 아니겠어?
난 감동반 원망반으로 그 달님에게 투정했지.
"달님. 어째서 그토록 저는 달님만을 보고 찾으려 했는데 달님은 그런 저를 보고 한마디 말씀조차 없으셨나요? 저는 그토록 당신을 갈구하고 바라보길 원했는데, 심지어 그릇된 물 위 당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을 때도 어찌 한마디 말조차 없으셨나요?"
그러나 달님은 여전히 아무말도 없었어. 그저 늘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하늘에 떠 있을 뿐이었지.
난 그 달님이 나의 이런 외침에 어떤 대답이라도 아니, 단지 가벼운 손짓이나 미소만이라도 돌아오길 기다렸지만, 그저 쌀쌀한 어둠속 자애로운 달빛과 늘 같은 환한 그 모습 그대로일 뿐 내게 그 어떤 다른 모습도 보여 주질 않았어.
난 그 달님의 무관심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고 그대로 다시 내가 속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지.
달님에게 무시당했다는 상심과 여러 상념으로 괴로워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달님은 내 그런 부름에 외면함에도 불구하고 그 빛과 찬란함은 어딜가든 내 앞을 비추고 있는거야. 달님이 나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여전히 달님이 하늘에 있음으로서 내 주변은 경이로움을 띄었고 특별함을 갖게했지.
하지만 난 그게 더 참을 수 없었어. 저 달님은 여전히 날 무시했고 저 빛은 날 위한게 아닌걸.
달님이 세상에 선물한 경이로움은 내 가슴을 도려파내는 것 같았고 달님이 세상에 준 특별함은 내 심장을 쥐어짜는 것과 같았어.
마침내 내가 집에 다다랐을 때 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달님을 보며 소리쳤지.
"달님! 이제 절 그만 내버려두라구요. 달님에게 저는 어떠한 특별한 의미도 갖질 못하잖아요. 제게 있어서 달님은 단 하나의 오직 소중한 단 하나의 달님일 뿐인데, 달님에게 저는 여느 수십억 명의 한 사람일 뿐이잖아요. 전 달님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 걸 더 견딜 수 없어요. 그게 저를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마 달님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실꺼라구요. 그러니 제발 이제 저를 비추는 건 그만두시구요,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나 비추시라구요. 달님의 빛을 받는 단 하나의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에야 달님에게 빛을 받지 않은 단 하나의 사람을 택하겠어요."
하지만 이런 내 외침도 달님에겐 아마 닿질 않았나봐. 그저 그렇게 내가 외치든 외치질 않던 그렇게 달님은 그 모습 그대로 떠 있을 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달님과 나는 물리적으로도 지금 내겐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걸.
아마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게 더 자연스런 일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지고 난 달님을 이해하려 했어. 비록 내 목소리는 닿질 않고, 나의 존재가 달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진 못하지만 말야. 결국 달님은 나를 비롯한 세상에 특별함을 주었고 그 특별함은 곧 몇시간 후에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사라짐이 분명하잖아?
내일이면, 시간이 또 지나면, 또 새로운 달님이 뜰 것 또한 틀림없지만 그 달님이 이 달님인지 누가 확신하겠어? 이 밤의 특별함은 이 달님만의 것인걸.
달님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아마 쭈욱 이 밤이 끝날 때까지는 이렇게 이 달님을 바라볼테야. 곧 몇시간 후면 사라질 달님이고 내 존재는 그 달님에게 의미조차 없는데다가, 내일, 그 후일 다른 달님이 떠서 다른 달빛을 보게 된다면 그 달님을 바라보게 되겠지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