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다 2020. 4. 24. 20:32

 난 학교가 멀기 때문에 하루에 왕복 총 3시간씩 꼬박꼬박 지하철을 탄다. 타려는 혹은 내리려는 수많은 사람들 속을 부대끼며 그 한시간 넘는 시간을 견디다보면 눈 앞엔 전혀 다른 공기의 낯선 곳에 내려지고 그것으로 끝이다.
 이러한 인스턴트식 이동은 내게 어떠한 감흥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꽤나 먼거리를 이동했다는 자각도 없다. 단지 실은 매우 가까운 거리이면서 지하철 노선도라는 복잡하지만 기능적인 수형도로 날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이걸로 괜찮은건지?
 지하철 노선도라는 수형도는 굉장히 기능적이다. 그렇지만 기능적인 그 배치와 단순화된 선들 사이 난 소외되어 있다. 거기에 조작되어지고 그 조작감속에 난 외로워진다. 분명 수많은 사람이 그 선들 사이에 있고 나 역시 그들의 일부이지만 왜 소외감을 느끼는 걸까?
 그 수많은 점들과 선위에서 난 수많은 기독교인을 만난다. 많은 수의 기독교 인들이 예수를 믿어야만 천국에 가고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 소리치며 저주한다. 안믿는 늬들은 지옥에 갈꺼라고.
 저주의 한편에선 많은 수의 기독교인이 찬송가를 부르고 찬송가를 연주하며 구걸을 한다. 그러하군. 세상은 그런거지.
 지하철에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해 얼굴마저 익숙해진 그들의 행색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돈을 주는자도 보이질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찬송가를 부르며 구걸하는 자와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간다는 그 둘이 한칸에 마주친다. 과연 그들은 서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찬송가를 부르며 구걸하는 자도 별로 개의치 않은 듯 그를 지나친다. 너희는 지옥에 갈꺼라고 목터지게 저주하는 자도 그를 신경 안쓰고 지껄이고 싶은대로 마음껏 저주한다. 그렇지만 구걸을 하는자의 찬송가와 저주하는 자의 목소리가 만나 왠지 미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그래 결국은 다르지 않은거야.
어째서 다 같이 하느님을 믿는자인데 한쪽에선 800억짜리 교회가 지어지고 또 다른 한쪽에선 한가족이 한달 80만원을 벌지 못해 허덕이는 걸까?
난 그 구걸하는 자가 내 앞에 지날 때 주머니에서 잔돈 400원을 꺼내 그 사람의 바구니 안에 넣어주었다. 약간 괴상한 짤그랑 소리.
난 그 구걸하는 자에게 800억짜리 교회의 목사도 못해주는 일을 해 주었다. 그렇게 돈으로 쳐 바른 교회에서 하는 기도를 하느님이 더 잘 들어줄거라 생각하는 건가? 예수님이 예수살렘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성전을 때려부순 일이었는데 그들은 과연 제대로 성경을 읽고 이해는 하는걸까? 그들이 믿는다는 예수는 과연 누구일까?
그 구걸하는 사람은 차량 끝에서 다음 차량으로 넘어가지 않고 바구니의 돈을 싹싹 긁어모아 돈을 대충 세어보고는 가방에 휙 던져 담아 넣었다. 그리고 다시 빈 바구니를 들고 태연하게 찬송가를 부르며 옆 칸으로 이동한다.
솔직히 한방 먹었다. 빈 바구니와 찬송가는 영업수단일 뿐이었는데.
집 근처 구의역에 도착할 때 쯤 지하철이 왠지 한번 덜컹 거리더니 평소보다 약간 속도를 급히 줄이는 듯 했다. 몸이 많이 기울어질정도는 아니었지만.
구의역에 내리니 주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타려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질 않고 왠지 부산하다. 역을 빠져나오는데 역사안에서 다른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대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내가 타고오던 지하철에 누군가 선로에 뛰어들어고 그 사람은 즉사.
기관사도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급브레이크를 하기엔 지하철에 이미 타고 있는 수백명의 안전이 위험하니.
난 죄책감을 느낀다. 실제로 난 시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분의 1만큼은 그 사람을 죽이는데 물리적으로 일조를 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 덜컹거리는 감촉이 오싹했다.
1번 출구로 나와 맞은편 건물 2층에 있는 헌혈의집에서 헌혈을 했다. 400미리리터의 붉음은 내 몸무게 분의 비율만큼이나 이 기분을 지울수 있을까? 손을 뻗어 채워지는 블러드팩에 손을 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못했다.
미지근한 피.
헌혈증을 받고 신호등 앞에 서니 갑자기 피곤해졌다. 신호등 앞의 사람은 여전히 많았고 그 가운데 팔 다리 없는 자가 찬송가 테잎을 틀어놓으며 구걸을 한다. 그 옆에선 박모 목사의 체육관에서 펼쳐지는 강연회 홍보를 한다.
혼란스러운 것들의 나열.
처음부터 여길 오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