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그러니까 2002년 말 혹은 2003년 초 쯤이었을꺼다.
그때 난 평소 알던 약간 얼굴에 여드름이 난 여자와 커피샾에서 차를 마시고 무언가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사실 난 말주변이 없을 뿐더러 별로 할말도 없고 해서 그 여자가 일방적으로 떠들고 난 그냥 이야기를 주로 듣는 편이었다.
그 여자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얼굴에 양볼에 흉하지 않을만큼의 여드름 혹은 여드름 자욱이 있었는데 거의 매일 여드름 치료를 받으러 피부과에 다니곤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여드름 자욱을 가리려 화장을 짙게 하곤 했는데 그럼으로써 피부의 상태는 더욱 안좋아지곤 했다.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사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 여자의 얼굴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의 손을 조물락 거린다든지 가슴을 만지는 감촉은 내 마음에 쏙 들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나도 무언가 희생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뭐 그런거다.
그렇기 때문에 난 주로 그렇게 몇시간 동안이나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떠드는 것이 끝나면 난 그렇게 그녀를 주물러댔다.
그렇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혼자 쉬지않고 매일 몇시간이나 떠들어대는 불가사의한 재능이 있어 언제나 나를 괴롭고 초조하게 만들곤 했다.
그 날도 혼자 그렇게 떠들던 하루였는데 싱거운 커피를 마시는 것도 지겹고 지겨운 그녀 목소리 듣는것도 지겨워져 이야기의 흐름을 끊을겸 문득 질문을 던져봤다.
"근데, 넌 여드름 치료를 받으면서 왜 계속 화장해? 화장하면 아무래도 피부에 안좋고 여드름 더 생기지 않냐? 넌 그리고 화장독 때문에 피부 안좋아진다고 징징대잖아."
그녀는 즐겁게 혼자 떠들다가 문득 얼굴이 굳더니,
"나도 하기 싫어. 화장독 올라서 피부도 안좋아지고. 근데 있잖아. 그러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거야.... 왜냐하면..."
그리고 그걸로 몇시간은 더 추가로 그녀는 떠들어대버렸다.
내 작전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