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속 거짓말

초등학교 4학년

야가다 2020. 4. 24. 20:48

본인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92년은 아직 노태우가 대통령이던 시절이었는데 그 때 역시 지금과 유사하게 남한만세 북한 쳐 죽일 놈이라는 교육이 횡행하던 무렵이었다.
 
그 여름의 장안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4학년 12반 역시 그런 수업이 한창이었는데 당시 선생이었던 권모 여 선생은(이름 까먹었다.) 자신도 구분 못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학생에게 침이 튀도록 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앞에서 3번째 줄에서 책에다가 낙서를 하며 옆에 놈과 떠들기 바쁜 본인은 - 역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지만 - 공산주의가 왜 나쁜것인지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는데 호기심 어린 마음에 선생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선생님, 공산주의하고 자유민주주의가 뭐에요?"
 
사실 누구나 인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 의미만은 선생에게 명확하게 전달 되었는지 아니면 선생이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오래해서 수준이 초등학교 4학년 수준밖에 안되는지 내 질문을 알아듣고 나름대로 경제 개념으로 명확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승보야, 공산주의는 모두함께 일해서 모두 함께 그 결과물을 똑같이 나누는 것이고, 자유민주주의는 각자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그 결과물을 차등해서 갖는거야."
 
지금이야 눈과 귀와 뇌속에 때가 많이 껴 이 둘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지만 당시의 천진난만하던 12살 소년인 본인의 머릿속엔 유토피아적이며 이상주의를 꿈꾸는 공산주의가 멋져보이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선생님,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더 좋은거 아녜요? 모두 함께 일해서 모두 똑같이 나눈다면 세상에 거지도 없어질텐데요."
 
그렇지만 선생은 사명을 받고 공산주의를 욕해야 하는 입장, 한편으론 별 흥미도 없는 교사생활 이런 초딩스런 질문을 계속 받는 것도 어느정도는 지겨웠을터, 그 선생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있는 힘껏 지어보이더니 내 자리로 하이힐의 뚜걱뚜걱 소리를 내고 걸어와 내책을 휙 집어들었다.
 
그리곤 낙서가 가득되어있는 내 책을 나에게 홱 집어던지며,
 
"이 놈아!!!, 이렇게 낙서하고 니 맘대로 제멋대로 구는게 바로 공산주의야!!!"
 
이렇게 소리를 지르곤 그 선생은 다시 아무일 없이 교탁으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더니 수업을 계속 진행하였다.
 
아니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공산주의랑 제멋대로 구는거랑 무슨상관이 있단말인가?
 
본인은 다시 그 선생에게 그게 공산주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따져 물으려다가 그러한 질문은 또 다른 일생일대의 실수임을 깨닫고 잠자코 책에다 낙서를 계속하였다.
 
그 뒤로 본인은 초등학교 4학년 내내 그 선생에게 공산주의나 체제에 관련되어 어떠한 질문도 할 수 없었고 본인이 어떠한 잘못을 할때마다 본인에게 그 선생은 "그게 바로 공산주의야."라고 주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