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머리가 아픈 것은 아마 - 아직은 국민학생일 그 무렵 - 초등학교 3~4학년이던 10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 나이 또레의 어느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여러학원에서 여러가지를 배우곤 했는데 그렇지만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거의 대부분에서 그다지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 사실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은 좋은 표현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난 운동신경도 둔하고 음악적인 재능도 없어 도와 미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손재주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오죽했으면 미술 선생이 미술시간에 내겐 언제나 주제없이 내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그려도 좋다고 허락을 했으며 태권도 도장의 사범은 이제 그만두는게 어떻겠냐고 직접 내게 말할 정도 였다. 그래도 어느 부모와 비슷한 내 어머니는 나에게 그러한 유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으며 난 여러 학원에서 여러 종류의 굴욕을 맛 봐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나에게 칭찬을 하던 학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주산/암산 학원이었다.
그랬다. 난 비교적 또레의 아이들에 비해 셈이 밝은 편이었다. 그건 어렸을 때부터 장삿꾼의 아들로 태어난 덕인지도 모르겠고 형제들과 내 몫 니 몫을 나누며 티격태격 했던 탓 인지도 모르겠다.
우무튼 나는 비록 내가 바라던 운동이나 미술, 음악의 재능은 아니었지만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곧 그 학원에서 내 재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손재주가 없던 나는 주산보다는 암산에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또래아이들이 2자리 계산을 겨우 하던 때 난 3자리 4자리 심지어 5자리의 연산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암산하는 법은 그 주산학원에서 배운 것인데 하는 방법은 대략 이렇다. 머릿속에 커다란 주판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아니, 너무 크면 손에 맞지 않고 운반하기도 괴로우니 자기 손에 들어갈 만한 적당한 크기의 주판을 머리에 떠올린다. 사실 평소에 쓰던 주판의 이미지가 가장 좋다.
그리고 그 상상의 주판에 실제로 풀고자 하는 숫자를 일일히 입력한다. 덧셈이든, 뺄셈이든 자신이 형상화한 주판의 범위 안에서는 대부분의 연산은 별 무리없이 가능하다.
암산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방법이 신기하고 대단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별로 특별한 방법이 아니다. 주산을 배우고 암산을 배웠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방법으로 심지어 평소에 계산기를 자주 이용하던 사람은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형상화 할 수 있다니까. 아무튼 여러 의미에서 낡았다면 낡은 방법이긴 하다.
이런 형상화가 익숙해지면 연산하는 숫자의 자릿수를 하나씩 늘려가는데 이건 매우 중요하고 심오하며 위험하고 매력적인 도전이다. 그 기쁨은 아마 리니지 레벨 52 달성 했을때보다 기쁠 것이며 그 위험성은 달리는 고속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것만큼 아찔하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 중 많은 사람들이 성취의 기쁨에는 동의하나 위험에 대해 동의하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이는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쨋든 시간이 많다면 일일히 자세히 설명해 주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암산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
아무튼 내가 머리가 자주 아프다라고 느낀 것은 그렇게 암산의 자릿수를 하나씩 하나씩 늘려가던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는데 그 통증은 마치 뱀 같은 것이 내 머릿속에서 뇌를 휘젓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통증을 느낄 때마다 난 평소에 애용하던 주판이나 자를 가지고 관자놀이 부근이나 머리 구석 부근을 툭툭치곤 했는데 그러면 곧 통증은 잠잠해 지곤 했다. 실제로 내 머리 속에 뱀이 있던 것이여서 툭툭치면 놀라 잠잠해진 것인지 아니면 타격의 통증에 정신이 분산되어 통증을 잘 못 느끼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매일매일 1알에 500원 정도하는 두통약을 사먹기 아까운 어린 초등학생써는 그렇게 나름대로의 응급처치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주산 3급 자격증을 땄을 때쯤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 주산은 그만두었지만 머릿속의 통증은 암산과 관계없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통증은 해가 지날수록 점점 심해져 갔다.
그 통증을 견디다 못해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한 건 고 3이 되던 19살 때였다. 무지하게 더운 여름에 밤늦게까지 학교에 붙들려 있던 나는 너무나 극심한 통증에 어쩔수 없이 조퇴를 했는데 학교 선생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 오전에 병원에 가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다음날 집근처의 어머니가 잘 알고 있다는 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원 원장의 이름을 딴 동네의 그저 그런 평범한 병원이었다.
그렇지만 들어서자마자 길게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의 줄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음에도 엄숙할만큼의 조용함 그리고 구석구석 먼지하나 없는 듯한 청결함에 왠지모를 깊은 위압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그런 분위기에 왠지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입구에서 우물쭈물하자 접수처의 간호사가 보다 좀 답답했는지 혹은 수상했는지 '이리오세요. 혹은 얼릉 안와!!'인 듯한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어정쩡하게 그 간호사에게 온 이유를 설명하고 의료보험을 제출하고, 의자에 앉아 호명을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말에 의자에 앉아 멍하니 병원 구석에 우두커니 혼자 신나 떠들고 있는 TV를 구경했다. TV는 병원 TV라 그런지 일밤 쇼 프로보다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의학 지식을 설명하는 방송을 주로 틀었는데 무슨 소린지도 알아듣지 못할 방송을 40분정도 보고 있자 곧 내 이름을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와 마주 앉자 의사는 언제부터 통증이 시작 되었는지 등 어제 뭐 먹었냐는 등의 간단한 질문을 하고 곧 청진기를 대보고 눈에 후레쉬를 비춰보고 내 혓바닥을 길게 빼보더니 무언가 알아 볼 수 없는 영어로 책상위의 종이에 대충 아무렇게 귀찮다는 듯이 휘갈겨 적었다.
그리곤 대수롭지 않게,
"일종의 뇌 디스토마입니다. 말 그대로 뇌에 사는 기생충이지요. 어렸을때 초콜릿을 많이 먹거나 우유를 많이 먹었을 때 감염되곤 합니다."
사실 난 단것과 우유라면 사족을 못 쓴다.
"간혹 기생한지 오래 되었을때 숙주의 정신에 착란을 일으킨다던가 환각을 보여주곤 하는데 어느정도까지 진행된지는 모르지만 거의 10년이 되었다면 이미 약물이나 간단한 약품 투여로는 치료가 어렵겠군요.
그렇지만 다행입니다. 우리 병원에서는 일반 큰 병원에서도 갖추지 못한 뇌 디스토마 전용 치료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것만 있으면 뇌 디스토마 치료는 아주 간단하죠. 원리야 이렇습니다. 이 기기의 머리만 집어 넣으면 되는겁니다."
그러면서 그 의사는 구석에 파마 기계 같은 것을 가리켰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환자분의 머리를 저기에 넣으면 조그만 드릴로 머리에 구멍을 뚫습니다. 아 그렇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취는 당연히 해서 아프지는 않을 뿐더러 구멍은 매우 작아 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 구멍에 빨대 같은 것을 넣어 뇌 디스토마를 빨아내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하실수 있는데?"
왠지 의사의 설명은 미친 소리같지만 의사의 말을 듣던중 왠지 두통이 격심하게 되어 난 그 수술을 당장 받겠다고 했다. 심지어 당장 이 두통을 멈추지 못하면 의사를 패 죽이겠다고 까지 소리를 질렀다.
그 파마기계 같은 의자에 앉고 마취를 받았지만 왠지 의식은 있었다.라고 해도 손발을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의식만 있었다. 그것도 왠지 몽롱한 상태라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아무튼.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지만 환자가 수술상태를 잘 볼 수 있게 배려한 것인지 모르는 앞의 거울 때문에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비교적 잘 관찰 할 수 있었다.
의사는 우선 가느다란, 마치 전기 공구용보다 더 가는듯한 드릴을 꺼내 내 머리 왼쪽 관자놀이 부근에 구멍을 냈다. 드릴로 두개골을 뚫고 구멍을 내는 소리는 얼핏들어 끔찍해보이지만 마취되면 감정조차 마취가 되는지 생각보다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구멍을 다 뚫자 일밤 슈퍼에서 보이는 요구르트 용 빨대처럼 보이는 빨대를 마치 진짜 요구르트에 꼽듯 툭하고 꼽았다.
그리고 의사는 우타다 히카루의 퍼스트 러브를 콧노래로 부르기 시작했다. 왠지 즐거워 보이는 듯한 행공이 퍼스트 러브와 어울리진 않았지만 좋을대로 흥얼거렸다. 그리곤 수술용 고무장갑을 벗고 마스크를 벗더니 내 왼쪽으로 와 빨대에 입을 대고 놀랍게도 한껏 쭈울 빨아들이는 게 아닌가?
뇌가 빨리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기생충만 쭈욱 빨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머리가 놀랄만큼 가벼워졌다는 것, 그리곤 곧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보니 병원 방 한구석에 마련된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아마도 그 때 본 것은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 때 당시 난 마취 되어있었고 의사 설명에 따르면 가끔 환각도 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머리 한쪽을 만져보니 붕대 밑으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크기의 구멍이 만져졌다.
그 뒤로 몇개월 간은 두통이 완전히 사라진 듯 했지만, 약 반년마다 다시 그런 느낌의 두통이 재발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 병원에 찾아가 그 시술을 받는다. 왼쪽 관자놀이에 작은 구멍이 있기 때문에 다시 구멍을 뚫을 필요는 없다.
물론 그 시술을 받을 때마다 그런 환각을 여전히 보지만 개의친 않는다.
두통이란 건 그런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