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다 2020. 4. 24. 20:51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조금 한산한 지하철의 좌석 끝에 앉은 나는 언제나처럼 휴대폰으로 간단한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2~3정거장 지났을 때 쯤이었다. 왠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더니 조금 지나자 흐느끼며 우는게 아닌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왠지 우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달래주고 싶었지만, 왠지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사실 귀찮기도 했기 때문에 약간 무시하는 척 외면하며 다시 게임에 몰입하려는데 그 여자는 갑자기 내 핸드폰 액정을 가리며 손을 내밀었다.
 난 약간 어안이 벙벙해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그 여자는 "손수건" 이라고 말했다. 아마 손수건이라도 달라는 의미 같은데 그래도 어이없게 쳐다보자 "없으면 휴지라도 주던가요."
 
 
 그 여자와 난 사당에 내려 간단히 술을 마셨다. 사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이동하는 즉 일종의 버리는 시간과 공간이지 만남을 가지려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 전개는 무척 곤혹스러웠다.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물과 간단한 음료를 마셨고 그 여자는 맥주를 마셨다. 그러면서 자신을 27살에 9급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그 여자는 곧 자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신은 소외받았다는 이야기에서 외롭다느니 어쩌니란 그렇고 그런이야기. 약간 귀에 못박힌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라 좀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으나 그냥 두고 가버리는 것은 그것대로 예의가 아는 듯해 겨우겨우 듣는척은 해 줬다. 그러나 내가 귓등으로 듣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인지 가끔 "네? 그렇죠?"라든가 내게 어떤 리액션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땐 그때마다 대충 둘러 대답해 주었다.
 
 술을 다 마시곤 근처의 DVD방에 갔다. 거기서 굉장히 최루성이 강한 영화와 약간 하드코어적인 포르노를 봤다. 그 여자는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불치병으로 죽는 뻔한 장면에선 펑펑 울었고 포르노 영화를 보면서는 깔깔 웃어재꼈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는 말에 그 여자는 남자 성기를 빠는 여자의 쩝쩝 거리는 소리가 웃기다고 했다.
 포르노를 보며 잠깐 그 여자와 섹스를 할까 생각하다가 왠지 피곤해 그만두었다. 이미 시간은 3시가 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이제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자 그 여자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곤 지하철에 뛰어내려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 정도면 내 의무는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3시에 지하철이 다닐리도 없고 너무 피곤해 그냥 어서 아무렇게든 죽어버리라고 해줬다.
 그렇지만 그 말에 별로 기분나빠 보이지는 않은 듯 했다.
 "있잖아요. 아까 웃은거. 당신 침 삼키는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거에요. 꿀꺽 꿀꺽."
 약간 창피했지만 뭐 어떤가.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난 택시를 잡아 그 여자를 태우고 먼저 집에 보냈다. 택시에 타면서 그 여자는,
 "전 정말 오늘 죽을 꺼에요. 지하철 운전하는 분이 불쌍하지만.... 그렇지만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출발하는 택시를 보며 나도 택시를 잡으려 손을 흔들었다.
 어쨋든 나도 집에는 가야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