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학교에서 정정구조의 절점하중에 대한 모멘트에 대해 수업을 받고 있던 즈음에 밖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한바탕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네시 쯤이었다.
그 때 난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바로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어떻게 한번 이 여자와 엮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 우박소리는 날 다시 현실로 불러들여왔다. 난 우산이 없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 앞자리에 앉은 여자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사실 앞자리의 여자는 그다지 볼품 없었다. 일단 너무 말랐으며 가슴도 작았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던 건 목이 헐렁거리는 심지어 뒤에서 브라가 비치는 흰 티 셔츠를 입고 있던 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날 자극할 만한 무언가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채 두뼘도 되지 않을듯한 작은 어깨는 자신을 있는 힘껏 뼈가 으스러지게 안아달라는 듯이 날 유혹하고 있었고 언듯 언듯 보이는 얼굴의 주근깨는 꼬집어 달라는듯 재촉하고 있었으며 대충 묶어올린 머리사이로 보이는 작은 뒷목은 왠지 성적인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그래도 무엇보다 참을 수 없게 한 건 귀에 박힌 작은 귀걸이였다. 조고맣고 부드러우며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귓볼의 촉감, 거기에 고통을 주며 날카롭고 딱딱하며 차가운 귀걸이가 박혀있는 모습은 존재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계획을 짰다. 어떤 일을 해야할지 머릿속에선 65,536개의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졌다. 비록 거절당한다하더라도 물러서면 안될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작은 어깨를 꽉 껴안고 싶었다. 일초 일초 손이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인생 최대의 인내심을 발휘해 버티고 버텨 그럭저럭 수업을 마칠 때였다. 그녀는 무슨 선약이라도 있는지 재빠르게 책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놓치면 안된다.'고 급한 생각에 나는 "저기요." 라는 말과 함께 뛰어갔지만 그녀를 불러세우기 몇 걸음 앞에 책상에 걸려 그만 휘청휘청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곤 정말 재수없게도 그 여자와 부딫혀 난 멀쩡했지만 그 여자는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난 정말 미안한 마음에 "괜찮으세요?"라며 어릉 책과 가방과 소지품들을 주워주려했지만,
"건들지말고 그냥 두세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아니면 기분이 나쁜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깔끔을 떠는 성격인걸까?
아무래도 좋았던 나는 그녀가 일어나는 동안 죄책감과 의무감 및 여러 만감이 교차하며 그녀의 소지품을 모두 주웠다. 주으며 생각한 것은 오늘은 날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앞으로의 가능성까지 막을 수는 없다는 것.
소지품을 모두 주워 그녀에게 건네주자 그녀가 받더니 그것들의 먼지를 털듯 탁탁 털며 들릴듯 안들릴듯 조용히 말했다.
"아, 뭐 이런 재수 없는 게 다 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