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다 2020. 4. 24. 21:09

 내가 산타를 믿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래도 9살까지는 반신반의였지만 믿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7살 이전의 나는 아마 산타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7살때 비록 조잡한 분장을 한 가짜 산타이지만 인형을 선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난 그럭저럭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7살때 그 산타라는 놈은 내게 평소에 죽을만큼 갖고 싶던 로봇 장난감 대신 당장 쓰레기 통에 버릴만큼 시시한 곰인형을 한개도 아니고 두개나 줬었는데 당시 매일 애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던 놈이 그 로봇을 받게 되었을 때 '산타 이 자식 몹쓸놈이로군' 이라고 생각도 했었다.
 물론 나중에 몇년 지나고 나서 그 곰인형이 때가 타 버리게 되었을 쯤 난 그것이 북극 산타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그냥 어머니가 유치원에 아이에게 주려고 사다 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땐 내 취향을 전혀 모르는 어머니를 좀 원망했었다.
 그 뒤로 내 인생에 가짜든 진짜든 산타가 찾아오거나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에 자고 일어나면 항상 머리 맡엔 무언가 선물이 놓여있곤 했는데 거기엔 산타대신 엄마가 혹은 아빠가로 된 쪽지가 적혀있곤 했었다.
 아마 그 두사람은 자식들의 꿈을 지키고 키워주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노고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기분이 먼저인듯 했지만, 아무튼 동네 천하의 개씹썅놈 호로자식 같은 놈들도 매년 산타가 찾아오는데 왜 나에겐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으로 지내던 어린 나에게 친척누나는 마치 로제타 석과 같은 의문의 열쇠와 동시에 금단의 비밀을 귀띔해 주었다.
 
 "산타는 없어."
 
 산타는 없다니? 산타가 왜 없어? 선물 배달하다가 죽은거야? 아니면 얼마전에 죽은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아서? 그 나이에 상당히 충격적인 말인 산타의 존재를 부정하는 누나의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시 어린나이에 동네 모든 아이에게서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그 누나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 누나는 당시 무려 어른과도 맞먹는 초등학교 6학년이기 때문이었다.
 그 어른과도 같은 누나는 계속 나를 동심의 세계에서 빼내어 오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은 산타 혼자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를 돌수 없다는 물리적 기초지식은 빠져 있었지만 말이다.
 
 "바보, 그게 아니라. 산타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는거야. 모두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란 말이지. 아이를 말 잘듣게 하기 위한 교묘한 술책이라 이거야. 생각해봐. 왜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왜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을지. 착한 아이는 맞으면 아프지도 울지도 않은가보지? 또 전 세계에 만명도 넘는 애들이 있을텐데 그 애들이 모두 우는지 안우는지 어떻게 알아?"
 
 난 각 국가마다 전담하는 산타가 따로 있을거라는 말로 반박을 하려 했지만 결국 난 그 누나의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만 해도 어린이가 적어도 수천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절대 산타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몇년간은 부모님께 산타를 믿는 척 연기했다. 비록 쓸모없는 곰인형이라도 선물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