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술을 잔뜩 퍼마시고 일어나는 다음 날 아침에는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내 지독한 입냄새, 또 다른 하나는 나와 다른 입냄새를 풍기며 알몸으로 고꾸라져 있는 여자가 그것이다.
난 그 두 입냄새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가 배던 베개를 그 여자 얼굴 위로 덮어놓고 양치하러 일어났다. 근데 저 여자는 누구였더라? 뭐 또 똑같은 그저 그런 여자이겠지.
이를 닦으며 거울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눈은 퀭한게 다크서클이 짙에 드리워져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고 수염은 하룻밤에 1센티는 자란 듯 했다. 어젯밤에 어지간히 퍼 마신 모양이다.
이를 닦다보니 샤워하고 싶었다. 팬티를 벗고 샤워를 한다. 이걸로 술 냄새는 없어지겠지만 내 고환의 정충은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불알을 내려다보니 축 쳐진게 처량해 보였다. 뭐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겠지. 하루 이틀 쉬다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빵빵하게 정충들로 차 오를 것이다.
근데 난 어제 과연 피임을 한건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새 속옷을 입은 다음 밖으로 나왔다.
원룸의 한 쪽 블라인드 사이로 짜증스러운 흰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방안은 어제 벗어재낀 내 것인지 저 여자것인지 알 수 없는 옷들로 널부러져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것 같은 풍경이다.
그 햇빛을 싫어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는지 그 여자도 얼굴을 잔뜩 찌뿌리며 일어난다.
“.........야, 햇빛 좀 가려봐”
면상을 보니 속눈썹은 떨어져 눈에 대롱대롱 메달려 붙어있었고 마스카라는 번져 귀신 같은 몰골에 립스특은 왼쪽으로 길게 번져 삐에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게 아무리 봐도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였다.
난 블라인드 손잡이를 돌려 햇빛을 가리고 어제 바닥에 헝클어져 있는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기 시작했다.
“이봐.”
방금 일어난 듯한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여자가 나를 부른다.
“근데 어제 확실히 콘돔 쓴거야? 안에다 싼 거 아니지?”
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아 씨발...큰일이네... 어젠 좀 위험했는데..”
그리곤 그 여자는 아무일 없다는 듯 다시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난 열쇠를 그 여자 머리 맡에 두고 나갈 땐 꼭 문을 잠근 다음 우편함에 열쇠를 넣어두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약간 눈에 자극을 주는 듯한 밝은 빛이었지만 익숙해지니 조금 나았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천원짜리 몇장이 들어있다. 다행이었다. 이걸로 옥희네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옥희라는 것은 분명히 본명이 아니었다. 단지 나 역시도 다른 손님에게 옥희라고 부르라 배웠을 뿐이었다. 사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남자에게 왜 이런 이름이 붙어있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그 가게의 단골은 옥희가 예전 드라마 옥희의 흉내를 잘 내서 그렇게 이름이 붙혀졌다고 했지만 난 그가 성대모사 따위를 하는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다른 소문으로는 오케이 오케이라는 말 버릇이 있어서 그런 별명을 가졌다고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런 별명을 얻기엔 조금 어색했다. 옥희가 주로 하는 말은 오케이라는 단어보다도 젖, 똥, 씹, 불알이 들어간 시시껄렁한 저질스러운 농담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하는 농담은 대체로 이런식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여자처럼 가슴이 솟아 있는 거야. 난 너무 놀라서 끔찍한 마음에 화장실에 가 거울로 확인하려 했지. 근데 사람이란게 묘하게도 화장실에 가면 똥이 싸고 싶어지더군. 그래서 똥을 싸러 바지를 내렸더니 불알이 뚝 떨어져 저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거 있지?”
아무튼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탓에 옥희는 여자손님에겐 최저의 인기였지만 비교적 비정상적인 일부 여성과 꽤 다수의 남성에게는 인기가 좋았다. 아무튼 그런 자주하는 단어로 그의 별명을 짓는다면 옥희보다는 좆, 젖, 씹, 똥 등의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이름을 쓴다면 장사를 하는데 확실히 부담이 있겠지. 난 좆이라고 부르며 맥주를 주문하는 것을 생각하며 스스로 킥킥 대보았다. 오늘 한번은 실수인 척 그렇게 불러보고 왜 그렇게 불렀는지 물어본다면 저런 이유를 대며 변명을 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옥희의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아직 열기에 이른 시간일 수도 있지만, 항상 비슷한 시간에 가게를 열고 비교적 영업 종료 시간을 잘 지키는 옥희로는 상당히 의문인 일이다.
난 어쩔 수 없이 가게 앞에서 서성이며 10여분 정도 기다리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술에 취하지 않고 이렇게 맨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도 상당히 오랜만의 일 같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직 그 여자는 자고 있었다. 깨워 집에 보낼까 생각했지만 그만두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물을 마시고 오줌을 싸고 냉장고에서 조금 오래된 것 같은 소세지를 꺼내 익히지 않고 먹고 나니 조금 심심해졌다. 저 여자를 깨워 다시 섹스를 할까 생각했지만 지독했던 저 여자 입냄새를 생각하곤 그만뒀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재워둘 수 없는 일이라 그 여자를 깨웠다. 난 그 여자에게 집에서 걱정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그 여자를 깨워 돌려보내려 했다.
“아~~ 그만.. 그만.. 좀..... 어제 이야기한 거 벌써 잊은거야?.. 좀더 자게 내버려 둬...”
대체 어제 난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걸까? 어제 무의식의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아닌것인가.
술에 취해도 내 밑바탕에 깔린 인격이란게 존재하고 변하지 않는다면 그 여자에게서 무슨 이야기든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과연 그 여자를 깨우고 내보낼 권리가 있는 것일까? 아니 대체 어제 들은 이야기 내용은 뭘까?
왠지 불의의 일격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사이 다행스럽게도 그 여자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오만상을 찌뿌리며 일어났다.
“알았어, 알았다구. 일어나면 되잖아.. 근데 몇시야?.. 내 전화기는? 화장실 좀 써도 되지?”
그 여자는 침대 위에서 벗어놓은 팬티 한 장만 주워입고 이것 저것 챙기더니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난 그 여자가 화장실로 들어간 틈을 타 침대를 정리하고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어 방안의 환기를 시켰다. 그 다음 벗어놓은 옷가지 등을 정리해 한쪽으로 몰아놓고 냉장고에서 물을 마신다음 그다지 할 일이 없어 전에 읽다만 책을 들었다.
한 5장정도 읽자 그 여자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왔다. 나올때는 언제 꺼냈는지 내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들어갈 때는 괴상한 모습의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반해 지금은 그나마 조금 사람처럼 보였다.
현실적인 모습이 되자 난 저 여자의 이름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난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 그런거 알려주고 싶지 않은데.....”
하룻밤 같이 섹스를 해도 이름은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그 여자의 말에 약간 웃음이 나왔지만 난 참고 이름을 모르면 부르기 불편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다시 그 여자를 설득했다.
“그것도 그렇겠네. 그럼 ‘나’라고 불러. 내 성이 나 씨니까 그 정도로 괜찮을 거야.”
그렇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가령 저 여자는 바보라고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바보’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것이 저 여자를 가리키는 것인지 나를 가리키는 것인지 의미가 모호해 져 의미가 불명확해지지 않는가.
난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자 그 ‘나’는 다시 조금 생각하더니,
“그럼 내 이름을 듣고 웃거나 그러면 안돼. 난 내 이름에 약간 콤플렉스가 있거든. 촌스러운 이름이기도 하고, 또 너가 혼란을 가질 수도 있어서 왠만하면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던거야. 그래..... 옥희라고 불러. 나 옥희. 내 이름이야.”
대체 왜 이 이름이 혼란을 준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