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속 거짓말

유진에게

야가다 2020. 3. 26. 21:09

유진이에게
오늘 저녁에 인규에게 전화했었다.
뭘 위한 전화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단순히 내가 밖과 아직은 연결되어 있구나 나는 아직 잊혀진게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그걸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통화내용중에 들었다.
네 외할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사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외할머님꼐서 돌아가신건 굉장히 안된일이야. 누군가 죽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지.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야.난 이기적인 인간이라 결국 내 자신의 이야기밖에는 못해.
누군가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지만 난 늘 소내하고 있기 때문에 빈 내속을 찾는일에만 열중이거든.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 이야기만 하련다.
중학교 2학년 쯤 되었을때 이야기지. 그땐 우리집이 비디오 가게를 했었어.
당시엔 케이블 티비가 막 보급되던 시기라 비디오 랜탈업계가 사양곡선을 그리고 있는 시기였지. 덕분에 우리집 또한 꽤나 형편이 어려웠어.
그래서 어쩔수 없이 살던집을 나와서 집을 옮겨야 할때가 있었지.
비디오 가게 앞 골목에 깊숙히 들어가보면 있는 그저그런 싸구려 2층 집이었는데 꽤나 낡은 건물이었어.
건물 아랫쪽은 회색과 하늘색 페인트를 써서 도색을 했는데 꽤나 낡아서 다 벗겨져 흉물스러웠고 그나마 위층은 붉은 벽돌로 외벽을 해서 그나마 괜찮았는데 전체적으로 봤을땐 예전에 1층짜리 집을 2층으로 올려버린 느낌이 들었어.
그런 느낌과는 생관없이 우리 가족은 2층을 썼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건물밖에 건물에 붙어있는 식으로 되어있었는데 시멘트로 된 커다란 블럭을 쌓아둔 모양이었지.
계단 왼쪽엔 페인트가 벗겨져서 녹이 쓴 파이프가 손잡이를 대신했었어. 녹물이 흘러내린 자욱까지 남아있었어.
그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우리집 문이었는데 손잡이에 달려있는 자물쇠 역시 녹이슬어 꽤나 힘을 줘야 겨우 열리는 문이었지.
그리고 힘을 줘서 연 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왼쪽엔 낡아빠진 신발장이 있었고 오른쪽엔 겨우 두사람 나란히 걸어갈만한 복도엔 길게 쭈욱 세탁기와 보일러가 있었어.
덕분에 집 문을 열면 항상 경유 냄새와 빨래 묶은 냄새가 끊이질 않았지.
단지 다행인 점이라고 한다면 집 안과 밖엔 모두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투명하진 않았지만) 그 녹슨 난간 밖으로 옆집 목련 나무 가지가 이쪽 담을 넘고 들어와 문 밖에선 목련꽃 향이 난다는 것이었어.
그래서 냄새가 지겨워지는 날이면 항상 창문을 열어놓고 햇빛과 목련꽃 향을 들여놓곤 했었어
난 그 목련꽃 덕분에 꽃의 향기를 알게 되어서 국화꽃을 화분에 심어 계단에 두곤 했었지.
중학생이었던 떄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선키스트 오렌지 병에 물을 가득 담아서 주기도 하곤 했지만 곧 진드기가 생겨서 비실비실 죽어버리더군.
그리고 밑층엔 남매가 살았어.
권씨의 남매였던거 같은데 이젠 10년정도 되어버린 이야기라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군.
여자쪽이 누나였는데 나보다 2살이 어렸던 걸로 기억이나.
난 동네 아이들 노는거엔 관심이 없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내 동생이 어느정도 골목대장 노릇을 했던 모냥이라 금방 알게 되고 자연히 친해지게 됐었지.
그리고 내 동생이랑 꽤나 자주 어울려 놀았던거 같은데 생각해보면 항상 내 동생의 부하 노릇만 했던거 같애.
하긴 그것도 그럴것이 내동생은 딱지치기, 병뚜껑놀이, 카드게임등 못하는게 없었거든.
그래서 그랬는지 항상 내 동생에게 기가 눌려 살았던거 같애.
여름방학의 어느날이었어.
내동생이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개구리알을 구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꽤나 여름방학에 할일이 없었던 나는 뭐 그다지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같이 가주기로 했지.
동생은 뭐가 그리 심심했는지 밑에 그 남매도 같이 데려갔어.
그 남매중에 누나쪽이 동생이랑 동갑이다 보니까 같은 숙제라는 이유도 작용했겠지.
개구리알을 가지러 가는 곳은 뚝방이었는데 집밖의 가게 반댓편 골목으로 큰 길 3개만 지나면 되는 곳이었지.
그래서 여차저차 가게 됐어.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지.
뚝방 바로 옆은 큰 도로가 있었는데 뚝방에 있던 웅덩이를 메우는 공사가 한창이라 모래를 가득 실은 트럭이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질주하곤 했었어.
그리고 놀이를 좋아하던 나이답게 내동생과 나 그리고 권씨 남매는 서로 경쟁이 붙고 말았지.
그리고 서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됐었어.
처음엔 넷이 나란히 천천히 걸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초해 지는거야.
저 자식들이 우리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어쩌지?
비록 동생이 하고는 있지만 중학생 나이가 있는데 녀석들보다 더 나쁜 결과를 보기는 싫었어.
그래서 점점 걸음이 빨라졌는데 이런 마음은 나 뿐만이 아니었나봐.
점점 빨라진 걸음은 결국 우리 넷을 뛰게 만들었고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게 만들었지.
하지만 권씨남매는 동생과 내가 모르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나봐.
뚝방에 도로가 보일떄쯤엔 녀석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리 앞쪽에 있더군.
우린 더 빨리 달리기 시작했지.
더빨리
더빨리
흐르는 땀따윈 반푼어치도 가치가 없는 명예와 승부욕에 비하면 전혀라고 좋을정도로 관심 없었어.
심장은 터질듯 뛰었고 머릿속은 고통으로 인한 아드레날린 분비로 쾌감에 정신없었지.
뛰고 또 뛰었어.
빨리
그리고 더 빨리..
쾌감과 고통에 반쯤 일그러진 얼굴로 앞을 봤을때 그 권씨남매의 누나쪽이 하늘을 날고 있었어.
정확히 공중에서 2~3미티의 높이에서 1바퀴 돌면서 오른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지.
그리곤 입에 거품을 물고 몸엔 경련이...
도로를 건너다가 트럭에 치인거지.
그리고 걘 그대로 죽었어.
동생과 나는 움직일수도 없었고.
뭐가 뭔지 몰랐지.
슬프지도 않았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어.
며칠뒤에 관이 아래 1층집으로 들어왔을때 그리고 그 후로 계속 이 권씨 동생만 혼자 돌아다닐때야 약간 피부로 체험할수 있었지.
그게 내가 처음 겪은 사람의 죽음이야.
뭐가 뭔지 모르고 혼란스러운
단지 알수 있는건 그 죽은 대상의 존재의 소멸이라는 거지.
결국 그 일이 있은 후 그 집은 이사를 갔어.
내 동생에게는 그 권씨 남매중 누나의 죽음이 그 권씨 동생쪽까지 존재의 소멸을 가져다 줬지.
그리곤 그 남매가 보이지 않게 되자 자연스럽게 잊혀졌고.....
네 외할머님께서 돌아가신일은 잊고 있는줄 알았던 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어.
왠진 모르겠어. 네 외할머님과 이 권씨 남매 누나쪽과는 무슨 관계가 있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지.
그냥 갑자기 떠올랐고 그냥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2004년 2월 
오승보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