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다 2020. 4. 24. 21:12

내가 군대에 막내로 있었을 때 나보다 세살이 많던 ㅅ형님은 내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주었다. 대부분 날 기독교도로 만들려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신심이 없던 나는 좀처럼 그 이야기에 동화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 형님이 내게 해줬던 말중에 아직도 내게 말뚝처럼 머릿속에 깊숙히 박힌 말이 있었는데, 그건 "난 모든 걸 용서했다."라는 말이었다.
 
 그랬다. 그 형은 모든 것을 용서한 듯 보였다. 후임이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혼내지 않았고 온화한 인품은 선임들이나 간부들과의 사이도 좋게 만들었으며 누구도 그 형님을 싫어하지 않았다. 물론 나를 제외하곤 말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건 그 형님이 내게 큰 해꼬지를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형님은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내게 잘해주었으며,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듯 해서 내 눈엔 마치 그 형님 등 뒤에 아우라가 보이는 듯 완벽해 보였다.
 그런 완벽하고 내게 잘해주는 그 형님을 내가 증오하고 혐오하며 싫어했던건, 그가 그토록 완벽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살리에르 같이, 제갈량을 질투한 주유 같이, 예수를 사랑한 유다 같이, 난 그 형님을 질투하고, 사랑했으며, 시기하고, 죽이고 싶었다.
 그 형님이 있음으로해서 내 존재는 빛을 잃었고, 나 자신의 초라함과 비참함이 드러나는 것 같았으며 일분 일초 숨쉬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내 감정을 겉으로 표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난 적어도 바보는 아니었으며, 생각하는 법과 계획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죽이고 들키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군대에선 비교적 흔한 자살로 위장하면 그만이었다. 마침 뉴스에선 다른 사람의 자살에 관한 기사로 도배되어있던 참이라 베르테르 효과라고 말하기도 충분했다.
 그 ㅅ형님은 당시 대대장의 당번병이었다. 낮이나 늦은 밤에 당번실에서 혼자 커피를 끓이거나 책이나 성경을 보는 때가 많았다. 그 때 몰래 목을 졸라 천장에 메달면 되는 것이다. 이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난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그 날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난 그 형님을 죽이기 위해 전투화 끈 두개를 준비해두었고, 형님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시골이라 비교적 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쓰고 버린- 제초제 찌꺼기를 묻힌 수건에 작고 검은 대검도 미리 하나 준비해 뒀다.
 그리고 그날, 불침번을 피해 자다 몰래 일어난 나는 조용 조용히 그 형님이 있는 당번실에 접근해 갔다.
 당번실 문 앞에 섰을 때 당연하게도 난 수없이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이고 싶은 마음 한 편에는 그 형님을 엄청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게 영혼을 맡기고 모두를 용서했으며 주위를 사랑하는 그를 죽이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다. 내 이성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난 죽일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벼랑 끝에 몰려있는 사람처럼 내게 갈 수 있는 길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그 길로 가지 않는다면 스스로 벼랑에 떨어져 죽는 길 밖에 없었다. 그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난 전투화 끈을 손에 단단히 쥐고 뒷춤에 손이 잘 닿는 곳에 쑤셔놓은 단검을 확인하며 제초제를 묻혀놓은 수건을 다시 한번 더듬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크게하고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에 손을 대는 순간, 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대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형님은 혼자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난 들어가기 보다는 잠시 서서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아무래도 두명은 상대하기 힘들었다. 대화는 그 형님과 내 한 깃수 고참인 ㅎ인듯 했다.
 
 "......개새끼야, 너가 그 따위니까 니 후임 ㅇ가 그리 미쳐 날뛰는거 아냐. 너 씹새 맞후임 하나 있는거 제대고 관리 못하냐? 응? 너 한번 뒈져볼래? 어어쭈 이 새끼 대답을 안해? 응? 엎드려 개새끼야. 안엎드려? 이 개새끼가!! 이 꽉깨물어. 맞았을 떄 소리 조금이라도 나면 니 오늘 잠 다 잔줄 알아라."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낮엔 그리도 천사같던 그 형님이 밤에는 저렇다니. 대화 내용인 즉은 내 맞고참인 ㅎ에게 날 괴롭히라고 지시하는 내용이었다.
 낮에는 그리 성자처럼 행동하면서 밤에는 그리 다른 이를 괴롭히라고 지시하는 그 형님을 보면서 나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손은 더럽히지 않으면서 뒤에서 조종하며 모든 것을 지시하는 그 형님은 진짜 악당 중의 악당으로 보였다.
 난 그 형님을 죽이는 것을 포기햇다. 천사같던 그 형님은 죽일 수 있었지만, 모든 악의 근원인 악마같던 그 형님은 도저히 죽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 난 그 형님이 진실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날 갈구고 괴롭히라고 밤에 은밀히 지시하는 그 형님이었지만 난 그 형님의 이면을 알았고 그가 사실은 누구보다도 악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