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사실 잠이 깰 때는 언제나 그렇지만 정신은 어스럼히 깨어 있다. 그러나 그런 서툰 잠을 조각 내는 것은 이 세상을 온통 뒤흔들것 같은 알람소리다.
잠결에 난 쩌렁쩌렁 알람을 울리는 전화기를 들고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거의 언제나 같다. 새벽 여섯시. 아직 30분은 괜찮아.
아직 30분은 괜찮아. 난 다시 누울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앉아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언제나 다시 눕는 쪽이 이긴적은 한번도 없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 십오분, 다시 눕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찾지만 물은 없다. 주전자를 들어 입을 대어보지만 주전자도 비어있었다. 어젯밤에 물을 끓여놓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셔츠를 입고 타이를 메기 위해 거울을 보니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와 제멋대로 자란 수염의 꼴이 말이 아니다.
이번엔 면도를 하는 것을 잊은 것이다.
일곱시 쯤에 집을 나오니 여름답게 날은 어느정도 밝아져 있었으나 간밤에 비가 온 탓인지 날은 약간 쌀쌀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습도가 높은 탓인지 좀처럼 땀은 마르지 않아, 셔츠에 달라붙는듯 불쾌했다.
회사에 도착하고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일을 시작할 때 쯤이 되자 해는 그다지 높게 뜨지 않았음에도 날씨는 찜통같이 찌기 시작했다. 목덜미와 이마에선 주체하기 힘들만큼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손수건은 이미 충분히 젖어 제 기능을 상실한채 아무렇게나 둘둘 말려있었다. 그렇지만 손은 그 손수건을 꼬옥 쥐고 있는 것이 마치 마지막 동앗줄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체 무슨생각인지 이 건물 관리자는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사실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밤에 비가 와서 습도는 높았기 때문에 엔탈피의 개념에서 본다면 절대 사람이 쾌적함을 느끼는 그런 수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건물 관리자는 그런 엔탈피의 개념에 대해 절대 모를 것이고 아마 낮은 기온인 지금은 절대 에어컨을 켜지 않을 것이다. 온도계에서 표시되는 온도는 아마 에어컨 작동 온도에 비해 여전히 낮을 것이고 그것으로는 아마 자신도 덥지만 에어컨을 킬 명분은 절대 되지 않기 때문이디.
그러다보니 몸은 축축 늘어지고 견딜 수 없을만큼 괸장히 피곤했다. 오늘 아침에 30분 더 자지 않은것을 후회했다. 다움부터는 알람을 여섯시 반에 맞춰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시원한 물 한잔이 마시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물을 마신게 언제더라?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에도 물을 마시지 못했다. 그에 반해 땀은 엄청 흘렸으니 지금까지 갈증을 느끼지 못한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복도로 나가 정수기의 물을 마시려 했지만 일회용 컵은 모두 사용하고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갈증을 느껴 물을 많이 마신듯 햇다. 난 어쩔 수 없이 300원짜리 커피를 뽑아 커피를 모두 물받이 통에 쏟아버리고 그 컵에 물을 담았다.
난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렇지만 급한 마음에 컵이 덜 헹궈졌기 때문인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에선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정수기에서 나는 비릿한 물내음과 나른하게 달콤하고 은은하게 쓰디쓴 커피맛이 났다.
하지만 커피 맛이 난다고 해서 억지로 물을 뱉진 않았다. 이건 단지 물일 뿐이니까. 아주 조금 커피 맛이 나는 물.
일이 끝나고 퇴근 준비할 즈음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낮에 땀을 너무 많이 흘린것이 두통의 원인인듯 했다. 집에 돌아와서 타이를 풀고, 셔츠를 벗고, 티셔츠로 갈아입기 위해 티셔츠를 뒤집어 쓸 때 몸에서 쉰 냄새가 났다.
화장실에 가 세면대에 물을 틀고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니 머리를 잘라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가르쳐주듯 오른쪽 옆머리가 삐죽히 솟아 있었다.
일단 아침에 잊은 면도를 하고, 머리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티비를 켜 5년전 쯤에 극장에서 봤던 것 같은 영화를 틀어두고 아무것도 깔지 않은 맨 바닥에 그냥 드러누웠다.
바닥의 딱딱한 감촉에 등의 느낌이 묘하게 나른하고 또 개운했다. 이렇게 전에 바닥에 누웠던 때가 언제 였을까?
슬슬 졸음이 몰려오고 눈이 감긴다. 물을 끓여야 한다는 것.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것. 머리가 아픈 것. 알람을 다시 맞춰야 한다는 것이 까마득한 옛 일 같으면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같다.
커피. 낮에 물과 마셨던 커피맛이 떠오른다. 커피 맛과 함께 희미한 그림자와 같은 사람의 모습도 떠오른다. 낮에 물을 조금 많이 마셔 둘 걸 이라는 후회도 든다.
그 감각과 졸음에 나는 무기력하다.
나른해지고 아득해 지는 의식속에.
이젠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