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가다 2021. 12. 11. 21:50

 제가 살고 있는 중랑천 인근 부근은 - 사실 서울 어디든 안그러겠습니까만은 - 장마철 비 피해가 매우 심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장맛철의 비는 매우 질기고 심술 궃은 면이 있어 아침엔 날씨가 구름한점없이 좋다가도 오후에 갑자기 비가내려 속옷까지 모두 젖을때가 장마철에는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특히 장마철 비는 한번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치질 않고 2~3일 계속해서 내리는 경우도 있어서 부근 사람들은 우산이 없을 땐 대부분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가 나가기보다는 그냥 비를 뚫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정도지요.

 중랑천 인근부근은 사실 썩 그다지 경관이 좋다고 표현할 수는 없었어요. 구청인지 시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보행자와 자전거 통행자를 위한다고 옆에 포장을 한 도로를 깔아놓았지만, 기본적으로 잡초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듯이 자라있는데다가 중랑천 물의 깊이도 매우 낮은 편이라 물은 그다지 맑은 편은 아니었고 물의 빠르기도 그다지 빠르진 않았지요. 또 앙상한 철제 난간에 칠해져있는 흰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녹이 슬어있던 군자교는 그 경관을 더더욱 왠지 옛날영화에나 나올듯한 낡은 모습으로 보이게 했지요.

 하지만 이런 중랑천도 비가오면 전혀 다른 물줄기로 바뀌었어요. 빗물을 잔뜩먹은 냇물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지고, 무언가를 군자교 위에서 중랑천으로 떨어뜨린다면, 다시는 주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맑은 날씨에도 침침해보이던 철제난간은 무언가 공포스럽게 중랑천으로 누군가를 떨어뜨릴 것만 같아보였지요.



 제가 그 일을 겪은 그 날도 그런 장마철의 여러 날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 않은 하늘의 끝에서 검은 구름 한 무리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지요. 그 몰려오고 있던 구름 떼를 보고 저는 오늘 아침의 날씨는 약간 흐리겠지만 오후 쯤에는 한차례 쏟아지겠구나 라고 느낀 것이었어요.

 저는 그 즉시 창문을 모두 닫고 난간에 널어둔 빨래를 걷은 다음에 비에 젖지 않게 종이류도 모두 물이 새지 않는 곳으로 모우 옮겨두었어요. 그리고선 문을 모두 잠그고 우산을 챙긴 채로 사무실로 출근했던 것입니다.



 출근하면서 비록 버스 안은 여느 때와 같이 등교하는 학생들로 가득했어요. 그렇지만 모두들 비가 올 것이라고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지 우산을 들고 있던 학생의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였지요. 그렇다고 제가 그들에게 우산을 들고 다니라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저도 저 나이 때는 비가 오는 것을 예측할 수가 없었고, 그런 것은 오직 경험과 통찰력으로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기는 무리였을 거에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저 학생들이 하교할 때 쯤에는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일 뿐이었답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내려다 본 중랑천은 곧 비가 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같게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 중랑천 끝자락에서 스멀스멀 기어오고 있던 검은 그림자는 아마 제 예상이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어요.



 그 날 출근해서는 사무실 자리 배치를 싹 바꿨어요. 새로운 직원이 두 명 들어오게 돼 있는데, 그들에게 지저분하고 정돈 안 된 사무실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것과 새로 재편된 팀원들을 모이게 하기 위한 자리 이동이었지요.



 저도 새로 지정받은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서 짐을 챙겼어요. 컴퓨터를 옮기고 책을 옮기고 여러 가지 잡동사니 짐들도 옮겼지요. 그런데 그럼 짐 속에서 삼단접이 조그만한 검은색 우산이 하나 나오더군요. 이 우산이 뭘까하고 집어든 순간 저는 최근에 우산을 안갖고 나가던 날에 길 가 편의점에서 5천원을 주고 산걸 기억 한 거예요. 장마란 도통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라 저도 비가 오는 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아 잊어버리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전 그 우산을 가방 속에 잘 넣어뒀어요.



 퇴근하는 길은 제가 예측한대로 조그만 빗방울이 내리더니 금새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저는 우산을 갖고 나왔지요. 거기에 물론 가방 속에도 우산이 하나 더 있었구요.즉 저는 우산을 그 날 따라 두 개를 갖고 있던 거에요. 손에 들고 있는 것 한개와 가방에 넣고 있는 것 한 개 이렇게 말이에요.

 전 이게 무언가 제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했어요. 영감이란 단어가 옳은건가요? 복선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려나? 마치 영화와 같은 일이 제게도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게 된 것이죠.



 전 집에가며 그날따라 주변을 두리번 살폈어요. 목적은 단 하나였지요. 우산이 없는 사람을 보면 씌워주자!! 라는 것이죠. 물론 이런 선행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자신의 우산을 남에게 주거나 씌워줬을 때 자신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뿌듯함과 짜릿함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다행인지 그날따라 아침에 비가 안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우산을 쓰고 있더군요. 회사에서 역삼역까지 가는 동안은 물론이고 지하철 역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도 모두들 손에 하나씩 하나씩 우산을 들고 있었지요.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지하철역 앞에서 비옷을 입고 우산을 팔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씩 우산을 사는 모습을 보기도 했어요.



 집앞으로 가는 버스를 탈 무렵에는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드랬죠. 물론 모두가 우산을 갖고 다니며 비를 덜맞게 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본다면, 조금 아쉬운 일인것은 틀림 없었어요. 아 안되는가보다. 내게 일어날리 없지 같은 생각으로 집앞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서 내려 중앙차로에서 우산을 쓰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죠.



 그렇게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 버스에서 내린 한 여고생이 물을 첨벙첨벙 튀기며 제 쪽으로 달려오는게 아니겠어요? 그 여고생은 흰 교복에 아래는 베이지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머리는 긴 생머리였지만 비에 젖어서인지 엉망진창으로 흐뜨러져 있었으며, 가방엔 책이 많이 들어갈것 같지 않은 조그만한 걸 뒤로 하나 메고 있더군요.



 전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지만, 막상 우산을 씌워줘야 할 때가 오자 전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여지기 시작했어요. 물론 전 순수한 선의이고, 그 학생에게 불경스러운 어떤 일을 해보자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세간의 눈이라는 게 여학생에게 모르는 남자가 그러기엔 조금 이상한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또 만약에 그 여학생이 거절하면 스스로 민망해지고 창피해질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기도 했지요.



 전 애써 그 모습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오른쪽 시선의 끝사이로 그 여학생의 모습이 조금 들어오자 그 여학생이 무척 측은해지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비가 많이오고 바람도 많이 부는데다가 심지어 우산도 없는데 집에 사람이 한명도 마중을 오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 말예요.

 그러면서 제 어린시절이 조금 떠오르더군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비가오는날 우산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진 집에 보내질 않았거든요. 전 날이 어둑어둑해질때까지 하루종일 학교 교실에서 부모님을 기다리곤 했었지요. 그렇지만 제 부모님은 단 한번도 학교에 오시질 않았어요. 전 항상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방향이 같은 다른 아이의 우산을 같이 쓰며 집에 들어가곤 했었지요.



 그런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서 갑자기 울컥하는 거에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 여학생에게 우산을 막 씌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조금 쑥쓰러웠지만 그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어요.



 "우산.... 안갖고 왔니?"



 그러자 그 여학생은 본의인지 아니면 단지 비를 맞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한 표정으로



 "네.." 그러더군요.



 그렇게 정면으로 본 여학생의 모습은 시선의 끝으로 곁눈질로 봤던 모습보다 한층 몰골이 안돼 보였어요. 옷이 다 젖었던 것은 물론이고, 비록 한여름이지만 춥기도 한지 몸도 좀 떠는 것 같았어요. 전 그 모습을 보고 당장 제가 가진 우산을 주려고 했지만 막상 줄때가 되자 왠지 좀 아까워졌어요.

 그런거 있잖아요.

 막상 남 주려면 아쉬운 그런 느낌.

 그래서 저는,



 "그럼 아저씨랑 같이 우산 쓸래?"



 라고 했지요.



 제 말에 그 여학생은 별로 그다지 썩 내켜하는 표정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그 험한 날씨는 그 학생에게 갈등의 여지를 남겨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여학생이 망설이는 틈을 타 그 학생에게 우산의 씌우며 같은 방향이니 같이 쓰고 가자고 했지요.

 이윽고 신호등이 바뀌고 저와 그 여학생은 한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전 어차피 우산을 쓰고 갈 터이니 그 여학생의 집을 우선으로 가자고 했지요.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우산을 써도 그다지 비를 막는 효과는 없는 것 같았어요. 오히려 접이식 작은 하나의 우산을 둘이 같이 씀으로 인해서 덩달아 저까지 같이 젖고 말았지요.

 오른손으로 우산을 든 탓에 제 왼쪽 팔은 이미 흠씬 젖은 상태였고 바지와 구두는 물을 먹어서 한걸음 한걸음이 점점 힘들어 졌지요.

 제 옆을 보니 그 여학생도 사정은 비슷한 것 같더군요. 원래 비에 젖어 있던 그 여학생은 정말 봐주기 힘든 상태까지 흠뻑 젖게 되더군요. 그 여학생은 가끔가다 불어오는 바람에 몹시 추운 듯 몸까지 살짝살짝 떨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대로 둔다면 내일이면 그 여학생은 심한 감기에 걸려 앓아 눕겠지요.



 전 그걸 보고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어서 우산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그 여학생의 오른쪽 어깨를 살짝 끌어 안아 제 몸으로 밀착시켰어요. 그 여학생은 살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그렇다고해서 뿌리치거나 하진 않더군요.



 혹시 오해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때 저는 정말 하늘에 맹세코 단 한점의 흑심도 없었습니다. 알퐁스 도테의 소설에 나오는 양치기처럼 그저 저는 연약하고 어린 양 한마리를 보호하고 있다라는 생각 뿐이었지요.

 그 비에 젖은 어린 양은 갑자기 내린 비에 공포에 질려있고, 나는 한명의 양치기로써 그 어린 양을 부모가 기다리는 따뜻하고 포근한 우리에 곱게 모셔가는 역할일 뿐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제 심장은 비록 왼쪽에 있었지만 오른쪽 가슴과 팔, 그리고 손에 느껴지는 그 여학생의 온기와 비에 젖은 교복은 제 그런 생각을 더더욱 강하게 할 뿐이었지요. 그저 지금은 비구름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숨어있을 환하고 따뜻한 별 하나가 제 오른쪽에 붙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저 비구름이 모두 지나쳐 간다면 내 옆의 별님은 다시 하늘 어디론가에서 다시 세상을 미약하게나마 비추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자연스레 제 안에 사악하고 음탕하며, 추악한 생각 따윈 들지 않았지요. 전 그저 그리스 신화시대의 텔레마코스처럼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했지요, 젊고 혈기 왕성한 텔레마코스가 멘토르로 분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도움을 받아 지중해를 여행하며 오딧세우스를 찾기 위해 떠난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 누군가 저를 인도해 이 여학생을 무사히 집에 보내줘야만 하는 것, 그것이 내 운명이었구나 라는 필연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어요.



 이런 생각이 들수록 저는 저 사악한 폭풍과 비바람에 더더욱 용기를 가지며, 맞서 그 여학생과 함께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답니다. 그 여학생과 빗속에서 그렇게 하나의 우산을 쓰고 오른팔로 그 여학생의 어깨를 안은 상태에서 군자교를 건널 때 쯤에 들린 중랑천 물줄기에서 나는 엄청난 물소리와 빗소리는 과연 아침에 보았던 볼품없고 형편없던 그 중랑천이 맞나라는 의심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아마 그 여학생을 그대로 혼자 집에 가게두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기 두려울 정도로 공포스럽기만 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이미 이 일은 어딘가에 있을 어떤 신이 운명으로 정해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갖고 그 중랑천의 군자교를 한발자국씩 해쳐 나갔어요. 쉴새없이 내려치는 비와 우산이 뒤집힐 것 같은 강한 바람, 그리고 이따금씩 내려치는 천둥, 번개는 저를 그 시련에서 포기할 것은 종용하곤 했지만, 저는 그 어떠한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그 여학생과 함께 힘을 합쳐 군자교를 다 건널때 쯤이었어요. 찻길 건너편에서 왠 우산을 쓰고 있는 아줌마가 이쪽을 향해 크게 소리를 치는게 아니겠어요? 제 옆에 있는 여학생은 추워서 그런지 푸욱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고는



 "엄마!!"



 하고 크게 소리를 쳤어요.



 아 저는 그 순간 ‘이제 내 역할은 끝났구나. 드디어 양이 제 무리를 찾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지요. 샐린져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랬던 것처럼 저는 그저 제 일을 했을 뿐이었어요.

 횡단보도에서 곧 신호가 바뀌고 그 여학생은 새끼 캉가루가 제 어미 뱃속 주머니 뛰쳐나와 초원을 뛰어다니듯이 제 품과, 제 오른팔과 제 우산을 뛰쳐나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어요. 그 어머니도 급하게 제 쪽으로 걸어오더군요.



 저는 그 학생의 어머니에게 뭐라고 해야하나 살짝 고민했어요. 그 아주머니가 고맙다고 하면, 그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웃으며 제 집으로 갈 생각이었지요. 아무래도 저도 다 젖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서 한시바삐 젖은 옷을 벗고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몸을 녹이고 싶은 마음뿐 이었어요. 그러면서 오늘 하루 내가 이 여학생을 도왔던 일을 생각한다면, 최고로 행복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그렇지만 그런 제 예상을 가볍게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머니는 제 쪽으로 막 뛰어와서는 저를 퍽 하고 밀치더군요. 어린애를 상대로 지금 뭐하는 짓이냐라면서요.



 아니 씨발



 전 어이없다라는 표정으로 그 여학생을 바라보았지요. 그런데 그 여학생은 한술 더떠서 -어머니를 봐서 그런지 - 살짝 흐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전 그 여학생이 어떤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고 있었지만, 그 아주머니는 그저 저에게 속사포 같은 막말을 해댈 뿐이었어요.



 저는 좀 더 있으면 아주 크게 좃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저는 잘못한 것이 없지만 저 아줌마가 경찰이라도 부르면 내일 회사도 가야하는데 피곤해지니까요.

 전 그냥 손사레를 치며 됐다고 그저 돌아나올 뿐이었고, 그 아줌마도 제가 어느정도 거리까지 멀어지자 쫓아오진 않고 자신의 딸을 챙기고 또 어디론가 그렇게 빗속을 뚫고 가버리더군요.  



 빗물에 중랑천은 여전히 불어 흐르는 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