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속 거짓말

짧은 어떤 장면

야가다 2023. 4. 6. 08:57

 신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지만 아주 못할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 또는 신과 같은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세상과 녹아있어 우리가 쉽게 알아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아무나 눈치 채는 그런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난 신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공부와 조사를 했고 그리고 결국엔 내 주변에 있던 신을 만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신이라고 하면 우리가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근엄하고 위엄이 넘치는 흰수염을 길게 기른 그런 노인이 아니라, 그보다는 정반대와 같았다. 흰 수염은 없고 검고 아름다운 긴 머리가 있었으며, 근엄과 위엄보다는 세상에 지루해하고 무언가 나른해 하는 것 같았다. 노인은 없고 10대의 평범한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쉽게볼수만은 없는 것이 그녀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마치 신화속의 그것과 같았다. 아름다운 얼굴에서는 신비하게 마치 하나의 얼굴에서 세개의 표정이 나타나는 듯 했으며, 붉은색의 입술은 꽃보다 화려했다. 갈색의 반짝이는 수정을 박아놓은 듯한 두 눈은 순진한 듯 보였으나, 그 눈동자 안쪽에선 내 존재를 모조리 꿰뚫은 듯 했고, 당장이라도 사랑을 말할 것 같은 입술은 차갑게 닫혀 있었으며, 그 아름다운 얼굴 사이로 세상 만사에 지루한 듯, 허무한 듯 한 표정을 보였다.
 난 그 머릿결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아마 그랬다면 내 손과 나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난 그런 그녀가 공포스러웠으나 황홀했고 자칫하면 그 존재에 마음이 모조리 빼앗겨버릴 것만 같았으나, 나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신께 부탁을, 고백을 드릴 일이 있던 것이다. 나는 거대한 존재감에 마음을 다잡고, 그 여신님께 부탁을 올렸다.

 “신님 제게 부탁이 있습니다.”

”… 흐응? “

 그 여신은 간만에 찾아온 방문자에 대해서 호기심과 나른함을 가진 눈으로 날 보았다.

“어떤 부탁인데?”

“제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전 그녀를 정말 사랑했었죠. 저는 그녀에게 늘 무엇이든 할테니 제 곁을 떠나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게 늘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죠. 그리고 그녀는 제게 세 개의 시험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첫번째는 그녀가 자신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져도 내게 괜찮냐는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지만 그녀를 떠나보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괜찮다고 했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사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제게 고백했고, 또 다시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순간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녀는 꼭 제게 그 일이 끝난 후 다른 남자와 지난 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 고하였는데, 단어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 마치 피부를 벗겨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게 했습니다.
 두번째 시험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시험이 죽기보다 고통스러웠지만 제가 버틸 수 있었던건 그래도 그녀가 저를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제게 다른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며, 그 남자의 좋았던 점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제게 했습니다.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제 몸 깊숙히 박히어 몸속의 창자를 모두 꺼내어 자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 시험은 더 이상 그녀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시험을 제가 버틸 수 있던 것은 그래도 제가 아직 그녀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과 잘 지언정 그렇지만 나와 만나는 순간에는 그 순간만큼에는 저의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더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그 세번째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여 결국 그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리고 도망쳐버렸습니다.”

 나의 이 말에 황금색 보석 같던 여신의 두 눈이 반짝이게 되었다. 아마 그녀를 지배하는 오랜 지루함과 허무감을 다소 물리치게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너가 원하는게 뭔데? 설마 다시 그녀를 되찾고 싶은건 아니지?“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난 정면으로 바라볼 순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되도록이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쓰며 겨우겨우 대답해 나갔다.

 “아닙니다 여신님 제가 원하는 것은 그런것이 아닙니다. 전.. 다만 그저 다만 이제 평온해지고 싶을 뿐입니다. 이제 이런 것들과는 상관 없이요. 전 이제 다시 무너지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전 제 자신에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아요.”

 ”...그으래??“

 신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고양이와도 같았다.

“내가 그런 일을 잊게 해주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지.”

 내게 다가온 그 신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만졌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난 또 그렇게 무너져내려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