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
휴지를 돌돌 말아 펜의 머리 부분을 닦아낸다. 닦아낸 휴지엔 펜에서 묻어나는 질펀한 검은 잉크가 점점히 그려져 있다.
왜 일까?
난 다른 사람들보다 멍청하게시리 손에 잉크가 많이 묻는 편이다. 무언가 공책에 공식을 적고 날 때면 손에 한가득 잉크가 묻어 있는 때도 많았다. 그래서 종종 펜을 쓰다가 휴지나 헝겊을 이용해서 펜의 앞부분이나 손이 닿는 부분을 닦아내곤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줄곧 관찰해보면 그다지 손에 잉크가 묻어나는 것 같진 않는다. 나만 그러는지 몰라도 그 다른 사람들이 펜을 닦아내는 것을 보진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펜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는 모두 같은 펜을 쓰니까.
아마 누구나 모두 이런 자신만의 특징이랄만한 것들이 하나 씩은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난 손에 잉크가 많이 묻는 것이 일종의 내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이로 인해 꽤 번거롭고 귀찮지만 일정정도 펜을 사용하고 나면 앞부분을 휴지로 닦아낸다. 이것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그 번거로움에 펜 쓰는 법을 교정 해 보려하고 다른 펜을 사용하기도 해 봤지만, 어떠한 노력도 크게 효과를 본 적은 없다.
요는 이런 것이다.
그건 단지 펜 쓰는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본성에 가까운 어떤 것 떄문에 펜의 잉크를 손에 뭍힌다는 것이다. 내 본성이 어떻게 발현이 되었는지 그 메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만, 어찌되었든 손에 잉크는 뭍혀지고 있는 것이고, 그런 하나하나의 특성이 모여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이란 그저 싸구려 생물책에 나왔던 것처럼 물과 단백질, 지방, 칼슘 그리고 약간의 무기질로만 된 존재는 아니다.
본성이라는 것은 물론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뭐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찌보면 그들의 본성이 그렇기 떄문에 내가 뭐라할 것이 아니지만, 대놓고 그런 '본성'들이 비교 당하는 입장에선 비교하는 존재들이 여간 힘들고 피곤한 것이 아니다. 특히 그 비교되는 대상이 나와 정대칭점이 있는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가끔 믿기 어렵지만 나와 정반대점에 있는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 걸 본다. 지구로 따지면 내가 북극에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남극에 있다고 할 정도의 거리감.
실제로 유클리드 공간에서 남북극간의 거리는 의외로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의 생각은 결국 '대지'위에 묶여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 지구권적으로 생각해, 남극의 발 밑으로 내려가 북극으로 나온다고 생각해보면 지구라는 비 유클리드 타원형 공간에서 대지위를 따라가 극끼리 이동하는 거리보다 무척 짧을 것이다. 태양계를 넘어 은하계 입장에서 보면, 같은 절점을 가진 그냥 점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지구위에서 살고 있고 땅을 파서 남극과 북극을 왕래하지 못한다.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실제로 나와 그의 차이는 그리 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보다 더 큰 공백을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와 대치되는 극 점의 사람이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그것도 일년에 몇차례 보는 친족이라면 말이다. 난 불행하게도 그런 경우에 속했다. 외사촌 동생이 바로 나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 그것도 극과 극에 있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었는데, 태어난 달 또한 3~4개월정도로 겨우 몇 달밖에는 차이 나질 않았다.
그 외사촌과 나는 서로가 대칭점에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 같다. 우선 외모부터가 달랐으니, 어찌보면 그 다름을 느끼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외사촌은 키가 크고 늘씬했으며 쌍커풀은 없었지만 단단한 몸에 멋쩍은 듯이 웃는 표정이 매력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데에 반해, 난 키도 작고 땅딸만했으며 도저히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외모도 아니었으며 성격 또한 음침했다. 또한 그 사촌은 운동에 소질이 있서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지만, 난 주로 구석에 쳐박혀 자거나 책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와중에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 외사촌과 나는 서로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일찍이 인지했다는 것이고,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 외사촌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 의견 충돌이 나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서로 의견이 상충되던 때에는 보통 주도적으로 나서길 좋아하는 그 외사촌의 의견을 따르도록 난 배려하는 때가 많았으며, 그 사촌도 몇달 뿐이지만 나를 형으로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듯 했다.
난 한편으론 그 외사촌이 고맙기도 했지만, 사사건건 비교당하여 여전히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몇개월 터울의 형제나 친척이 있다보면 아무래도 여러모로 비교를 받게 되기 마련이다. 난 그 외사촌동생과 요람에서부터 현재까지, 단 한시도 비교를 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떠한 안좋은 습관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빌미삼아 나를 그 외사촌과 비교하며 힐난했으며, 난 속수무책으로 그 비판에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예를들면, 난 조개나 버섯의 물컹한 질감이 싫었다. 거의 끔찍할 정도 싫어했으며 해물탕 같은건 평생 입에도 대본적이 없는데, 재수없게도 그 사촌은 그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잘 먹었다. 같이 그런 조개나 버섯류, 두족류의 메뉴로 친척들이 모여 밥이라도 먹는 날이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들을 많이 겪기도 했다. 다른 사촌 동생들이나 다른 외숙부 등등이 보는 앞에서 나를 혼낸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항상 시작은 어머니가 시작한다. 대체 그 버섯과 조개가 뭔 상관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외사촌은 잘 먹고 난 먹질 않기에 내 키가 그리 작은 것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와 비교해 내 뒤떨어진 부분은 모두 그 조개와 버섯을 안먹는 내 버릇 탓이었다.
키, 시력, 체력, 얼굴이 금방 붉어지는 것 등등등 나의 육체적인 결함은 모두 그 조개와 버섯을 그 사촌만큼이나 먹질 못해서 생긴 것이라고 어머니는 몰아세웠으며, 주변 친척들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모두 한두마디씩 정도는 거들었다.
"O야 왜 안먹어? 이 맛있는걸?" / 니나 많이 쳐 드세요.
"음~~ 맛있어." / 난 됐으니 내 몫까지 먹으라고
"이 맛있는 걸 대체 왜 안먹지? 냠냠' / 아 글쎄 됐다니까.
"O야 이런걸 잘 먹어야 M처럼 키도 쑥쑥크지." / 이런 씨발.
결국 그렇게 먹지 않고 버티다보면 친척들은 먹이길 포기하고 다른 낙인을 내게 찍어버리곤 했는데, 버릇없는 놈, 고집이 센 아이 따위가 그것이었다. 뭐 어린나에도 나름의 경험과 배움이 있기에 그 낙인을 지우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아는 나는 가끔 억지로 그것들을 먹어야 할 떄가 있었는데, 그 씹는 순간의 물컹거리는 느낌이란 마치 맨발로 똥이 가득한 양동이를 밟아 미끌어지는 것과 내겐 같았다.
난 그리 괴롭게 구역질을 참아가며 울듯한 표정으로 심지어 눈물까지 맺으며 그 이물들을 씹고 있는데, 그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 너머로 그 사촌이 맛있다는 표정으로 - 의도적이진 않았겠지만 - 날 약올리듯이 조개를 먹을 때는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꼭 이 조개나 버섯이 원인은 아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론 좀처럼 친척들의 모임에 참석하질 못했다. 나름 진학을 하고 대학에 갔으며 군대도 가야했고, 회사에 취직하고선 생각보다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졸업하고 각양 각색의 사람을 만났고, 모두들 각자 자기만의 서는 위치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타인을 평가한다.
이런 사회적 위치와 스스로에게 붙은 사회적 평가는 만나는 사람과 내가 서는 위치에 따라 계속 변해왔지만, 나의 외모와 본성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성인 평균신장보다 작았고, 체력, 체격도 형편 없었으며 여전히 이성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러던 몇일전 십수년만에 그 사촌과 다시 만나야 할 일이 생겼다. 그 사촌이 집에 곧 결혼할 여자를 데려오는데 나더러 외숙모가 그 자리에 참석해서 그 여자가 어떤지를 좀 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 사촌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형제는 나 뿐이어서 그렇게 부탁한 것 같은데 이게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 사촌을 십수년만에 보는것도 어색할 뿐더러, 난 여자 경험이 별로 없어 여성을 보는 눈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숙모는 그런 사정을 모르니, 날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눈치다.
외숙모. 책을 본다고 거기에 모든 정답이 적혀 있진 않아요.
오랜만에 본 그 외사촌 동생은 더 멋진 남자가 돼 있었다. 운동 트레이너가 됐다는 그 사촌은 190 가까이 되는 큰 키에 다부진 가슴을 갖고 있었으며 마치 10대와 같은 매끈한 배를 가지고 있었다. 난 10대에도 저런 배는 못가졌는데.
비록 집이라 단촐한 차림이었지만 그 트레이닝 복 너머로 느껴지는 남성다움과 자신감이란 내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그 무엇 중에 하나였다.
"오랜만이네. M아."
"응 그러네 형."
아직 나를 형이라고 불러주었다. 다행이었다.
"O야 배고프지? 우리 저녁 먹고 있었는데, 와서 밥먹어."
자리엔 외삼촌 부부와 그 외사촌동생, 그리고 그 외사촌과 결혼할 여자가 앉아 있었다. 장래의 며느리를 맞이해 외숙모가 준비한 요리는 야채와 버섯을 잔뜩 썰어넣은 불고기였다.
난 다행히도 나이가 들면서 이런 씹는 질감의 문제는 조금 해소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조개류의 물컹거리는 그 감촉은 나이가 들어도 내게는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였다. 난 조심스럽게 세로로 길게 찢어놓은 버섯을 골라내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들리는 외숙모의 목소리.
"야 M아 야채도 먹고 그래야지. 당근만 이렇게 골라내면 어떻게 해?"
"아 당근 정말 싫단말야."
"저기 저 O형 봐. 양파니 당근이니 고추니 잘먹으니 얼마나 예뻐? 저런걸 많이 먹어야 O형처럼 머리도 좋아지고, 공부도 잘하고 그러지. "
"아. 정말 싫은데."
"어릴 때부터 O형처럼 먹으라니까 그렇게 안먹더니.. 자 먹어 어서."
외숙모가 그 외사촌동생이 덜어낸 당근과 양파를 그 외사촌의 밥그릇에 다시 올려놓은 순간, 난 하마터면 쥐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비교를 당하며 괴로웠던건 나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머리가 비어버린 채로 계속 반찬가지고 실랑이하는 그 외숙모, 외사촌 모자를 그저 입을 헤 벌리고 그렇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