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한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늘 하고 싶은 말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러가지 핑계로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늘 있다가도 없었다. 말이라는 것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의미가 있다가도 없다는 것은 나의 의미를 전하지 못하는 것인지, 전할 수가 없는 것인지, 전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그렇지만 늘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고 욕심인지라, 전하지 못할 의미없는 의미들을 글 속에 내 생각을 숨겨서 적어넣는다. 알아줬으면 좋겠지만 전할 용기가 없는 생각들을 증발해버리기 전에 볼펜의 잉크에 담아 끈적한 눈물처럼 꾹꾹 종이에 새기듯이 눌러 쓴다.
밑의 블럭을 하나 빼어 위로 올려 놓는다. 쌓아둔 탑이 위태위태 하다. 젠가 게임 원리는 간단하다. 하나로 쌓아올린 탑의 아래쪽 구성품을 빼낸다. 그리고 그 위에 쌓는다. 이것을 탑이 무너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아래쪽 공간이 비어버린 탑은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빈 공간이 생긴만큼 안정적이지 못한 구조물이 되어 비틀거리다 결국 무너지고 만다.
같이 젠가 게임을 하던 S에게 내 고통을 이야기 했다. S와 나는 그저 같은 탑을 계속 쌓고 무너뜨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의 고통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그것도 대답없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 싫다' 라고. S는 여러모로 나와 비슷한 친구로써 그렇게 알게 된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럼으로써 그 친구는 나의 고민을 이해하는 듯 했다.
"O야 지금 너한테 필요한 것은 두가지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모두 아는 내용을 다르게 이야기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과 같은 방법으로 이야기 하거나. 그런데 너한테 지금 필요한 거는 첫번째 인거 같네."
그 말 그대로 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같은 방법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다시 밑에서 나는 블럭을 빼내어 보려고 노력한다. 아래쪽의 나무를 톡톡 쳐내어 빼내려는데, 이렇게 높은 탑을 쌓는 것이 의미가 있나? 적어도 정리는 무너뜨리는 쪽이 하겠지만.
"고민은 충분히 하지 않았어?"
"응. 그렇지."
S는 말을 이었다.
"고민은 이제 할만큼 했어. 넌 할만큼 괴로워했다고. 주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너가 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거야. 넌 주변사람들에게 충분히 이야기를 했고 너를 이해해 달라고 했어.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지. 그들이 널 생각하지 않는데 너가 그들을 생각할 이유는 없는거야."
난 결국 탑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젠가의 탑이란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무너지면 다시 쌓아올리는 것 또한 젠가 게임의 일부니까.
난 무너진 탑을 잔해를 모으고 있을 때 S가 말했다.
"재밌어 젠가는."
"뭐가?"
"인간이 무너지는 것과 탑이 무너지는 거 비슷한거 같단 말이지."
"어떤점이?"
"일단 단단하게 일부가 모여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그리고 하나라고 생각했던 일부가 사라지는 거지. 그리고 그게 위에서 부담으로 돌아오고"
난 잔해들을 젠가 틀에 넣으며 되물었다.
"무너져 버린 인간도 젠가처럼 다시 세울수 있을까?
"그것도 똑같지. 차곡차곡 빈틈없이 다시 하나인 것처럼 쌓아가면 돼. 조각을 모아 순서대로 말이지."
"그리고 다시 무너 뜨리는거지?"
"잘 아네 이 자식."
난 쓴 웃음을 지었다. 나는 다시 젠가 틀을 뒤집어 탑을 세웠다. 다시 무너뜨리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