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 나무꾼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아팠다. 아마 비가 올 것 같았다.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날도 평소보다 쌀쌀한 것 같았다. 아직 봄은 완전히 지나가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계절이 위험하다. 이런 날씨는 잠깐 풀렸던 추위에 방심하고 있던 내 정신에 어느 새인가 뒤로 돌아와 주머니 칼로 내 심장에 난도질을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온몸의 근육통이 방심하지 못하게 경각심을 일깨워 줬다.
새벽에 웬지 S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졌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난 S에 대해 아는게 없구나 라는 생각에 그만뒀다. 과거엔 헤어진 애인에 관한 글을 많이 쓰곤 했었다. 딱히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한 때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게 목표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서툴렀던 나는 제대로 된 사랑을 써낼 용기도 없었고, 나의 삐뚤어진 감정이 부끄러웠으니 제대로 된 사랑에 대한 글이 써질리는 없었다.
늘 내 글은 모든 것을 숨긴채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사람들 중에는 그런 내용을 알아보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가끔은 그네들 중에 내 글에서 자기는 어떻게 표현될 지 궁금하다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이 언젠가 썼을 자기에 관한 글을 봤을지는 모르겠다.
난 사실 스무살 무렵에는 음악동아리 같은 활동을 했었다. 뭐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만 난 어디까지나 전문적이지 못한 수준에서의 그저 그런 활동이었다. 악기를 연주할 줄도 몰랐고, 기타는 F 코드외 세네개 코드를 외울 무렵 기타 살 돈이 없어서 그만두었던 나는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시간과 열정이 없었다. 내게 그 음악동아리로써 활동은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음악을 컴퓨터에 넣어 듣는 것이 전부였으나, 때로는 그런 갖지 못한 지식에 대한 지독한 열등감에 얉은 지식을 최대한 박박 긁어내어 들었던 음악에 대한 감상을 적기도 했었다.
그 무렵에는 수천개의 MP3를 하루종일 듣는 것이 일과였다. 지금은 스트리밍이 잘 되어 있어서, 늘 원하는 음악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때는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MP3 파일을 구걸하고 그걸 모아모아 리스트업을 하고 짧게는 3분 정도의 시간을 수십 수백번 반복시키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수십 수백번의 시간이 반복되어야 하루가 온전히 끝나고 그래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왜 그 음악 동아리 오프에 나갔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이 시간이 지겨웠을꺼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라면 그 시간들이 외롭지 않을꺼라는 또는 그들이 나를 바꿔줄 수 있을꺼라는 막연한 기대감 또한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어설프게나마 사랑 비슷한 것도 해보고, 그에 따른 이별 비슷한 것도 해보았으며,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 타인과 대화하는 법 따위를 배웠다. 아마 내가 그 동아리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지 않았을까 또는 지금과 다른 무언가 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곳에서 딱히 무언가를 했던 것은 아니다. 가난한 PC방 또는 편의점 알바였던 나는 한달에 한두번 신촌의 어딘가에서 모여 김빠진 오줌같은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그저 땅콩을 까며 세상을 한탄했을 뿐이다.
난 그들이 좋았고 그들과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이 좋았지만, 나와 달리 그들에게 그 모임이란 전부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변할 것 없는 삶에 작은 일탈이었으며 그들에게는 결국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각자 원래 있어야 할 곳에 하나 둘씩 돌아갔다. 내가 다시 수험끝에 대학에 겨우 들어가게 되었을 무렵에는 그 모임이란 거의 와해되다 시피했다.
모임이 와해가 된 이후에는 나의 사회생활의 전부이던 그 모임을 망친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다지 원망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사실 모든 만남에는 끝이 있는 것이고, 돌아갈 곳을 마련하지 못한 내가 어리석었던 거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하나 둘 씩 각자의 이유로 어떻게 보면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던, 그 모임을 그들이 떠날 때마다 세상과 나는 단절됨을 느꼈고, 그들은 나의 일부를 하나씩 가져간 것과 같은 고통을 받았다.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그들은 나의 일부, 아니 바로 나였고, 그들이 내 인생에서 사라짐은 나의 상실과 같은 것 이었다.
나는 나의 사라짐을 막기 위해 더욱 무신경해져야했다. 마치 니콜라스 쵸퍼 - 오즈의 마법사 양철나무꾼 - 처럼. 나는 나의 신체를 바꿔서라도 차갑고 무신경해져야 했다. 마녀가 잘라낸 자신의 신체를 양철로 바꿔낸 쵸퍼는 결국 원래 자신의 육체 따위는 한조각도 남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쵸퍼는 자신이 기계적으로 일만하다 마음이 없어졌음을 알고 괴로워 했다. 쵸퍼는 괴로워하다가 자신의 마음을 되찾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찾으러 나서게 되는 거지.
결론은 알다시피, 쵸퍼가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인 양철로 만든 심장 조각을 얻으며 해피엔딩인 것처럼 끝나지만, 과연 쵸퍼는 그것으로 괜찮았던 것일가?
나도 사실은 타인에 대해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관심이 없으며, 애정 따위는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고, 실제로 그 문제로 가까운 사람과 많이 다투기도 했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선배든 후배든. 그렇기 떄문에 나 역시 감정을 학습했어야만 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법, 슬퍼하는 법, 대화하는 법, 동의 하는 법.
이런 것들이 내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저 배워야만 하고 익혀야만 하는 그 무언가 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나를 오해하는 이들도 내가 학습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내게 따뜻하다거나, 다정하다거나 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정말로? 실은 엄청 귀찮아서 그냥 혼자 두었으면 하는데.
쵸퍼는 그가 갖고 있던 커다란 은색 도끼로 서쪽 마녀의 목을 내려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에게 그 마녀의 목을 들고가 마음을 되찾은 후에 자신이 떨어뜨려버린 마녀의 목을 안고서 엄청 슬퍼했겠지.
아마도.
누군가에게 난 운명이 있음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면, 어떤 이들은 나를 굉장히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한다. 의지 박약이라고 또는 그딴 것 좀 믿지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자신의 의지를 운세란 것에 맡기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운명이란 것을 믿고 노력을 통해 의지를 관철한다면, 그렇다면 그 것은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흔히들 안좋은 일들은 한번에 오질 않는다고 한다. 지금 내게는 수많은 문제가 나를 가로막고, 나를 괴롭게 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의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되질 않는다. 하루종일 넋이 나가있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 머리를 스치다 사라지며 괴롭힌다.
답답하고 분노에 쌓에 있으며, 어떤한 물속에서 억지로 숨을 쉬려 노력하는 것처럼 갑갑하다. 내가 그렇게 잘못된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왜 나는 호의를 내비췄는데 모두 나를 배신하고 왜 내 기대를 져버리는 것일까? 내가 그들에게 어떠한 큰 잘못을 저질러왔던 것일까? 아니면 나는 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아니었던 것일까? 나와 생각이 달랐던 것일까? 모두 내 기분과 같지는 않았던 것일까?
내게는 지금 어떠한 계시가 필요하다. 마치 서쪽 마녀의 목을 치고 오면 마음을 돌려주겠다는 오즈의 마법사과 같은. 일찍이 어떠한 현인은 내게 사상, 정치, 종교에 현혹되지 말라며 나를 가르쳤지만, 지금 내게는 그러한 것들이 너무 달콤하다. 내 마음을 되찾는다면 서쪽 마녀의 목을 치는 것 따위야.
원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적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ACROSS THE UNIVERSE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려했다. 모르겠다. 인생은 알 수 없는거지. 정말 운명이 있나? 정말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란 말인가? 내게 다시 도로시와 동료가 나타나 오즈의 계시대로 서쪽 마녀의 목을 치게 되는 것인가?
이 또한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