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속 거짓말

있어야 할 곳

야가다 2023. 5. 17. 15:42

 전화번호부를 이리저리 뒤적여보지만, 도통 전화를 걸어볼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원래 그런 것이다. 전화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약속을 하고, 만나고 싶은 날엔 도통 연락할 사람도 만날 사람도 떠오르질 않는다.
 외로움은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지 문제는 아니다. 만약 문제였더라면 분명히 해결방법이 있었을텐데, 적어도 지금의 내 외로움엔 그 어떤 해결책도 없어보인다. 외롭지만 역설적으로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이 현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난 밖으로 나선다. 누군가와 만난다는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북적거리는 사람 가운데에선 외로움이란 간혹 희석되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았지만.
 
 거리는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항상 다니던 그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이다. 집 앞 편의점도 그대로고 일요일 아침에도 시끄럽게 무언가 철물을 가공하고 있던 철물소도 여전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 편의점 점원이 바뀌었다는 점 뿐이다. 검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긴 손가락, 그 끝에 검은 매니큐어가 현혹적인 아이였는데 말이지.
 하긴 그 아이의 귀여움 또한 역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영속성을 갖지 못하고 변함이 분명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그 아이의 지금 귀여움이 소중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철을 만나 활짝 핀 장미꽃처럼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다니겠지만, 뭐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은거지.
 
 생각해보면 거리란 것도 상대적으로 변함이 없을 뿐이지 그 역시나 그 나름의 시간과 속성을 갖고 변함은 분명할 거다. 단지 그 속도가 사람에 비해 무척 길어 다만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어린이대공원 앞 컨테이너 박스, 세종대 콘크리트 기와 담벼락, 어린이 회관의 장미 넝쿨, 이 모든게 추억이 되지 않았나?
 군자교 아래 흐르는 중랑천 위 떠도는 저 오리 또한 영원할까? 아마 이 중랑천조차 영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중랑천이 녹았다 흘러내리는 것처럼 저 중랑천 역시 청계천처럼 절로 마르고 또 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심지어 우주조차도 순환하는 빅뱅처럼 언젠가 사그러지고 다시 폭발하겠지.
 
 중랑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난 자전거를 타고 중랑천의 근원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 중랑천의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에 가려했던 적이 있다. 자전거에 펑크가 나 당고개 언저리까지 가다 멈췄는데, 가도가도 변하지 않는 풍경에 지겨워서 오히려 집에 돌아갈 구실이 생겨 내심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뭐 내 안에서 중랑천의 이미지는 그렇게 영원, 무한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영원, 무한이라는 것도 지겹겠네.
 
 대충 중랑천 건너 편의점에서 커피와 도넛을 사서 먹고, 남는 건 시간 뿐이라 근처 극장에가서 잭블랙이 나오는 별 내용이 기억 안나는 영화를 본 다음에 이어폰을 꽂고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더 걸었다. 군자에서 화양리를 거쳐 건대입구까지 이어지는 그 길을 걷는 건 거의 15년 만이었다. 15년 전 이전엔 매일 걷다시피 하던 길이었는데, 사람이 변하게 되는 건 한순간이다.
 하지만 숨을참고 지나가지 않으면 귀신이 붙는다는 소문에 매번 숨을 참고 그 앞을 지났던 장의사 집도 없어졌고, 커다란 굴뚝이 있던 목욕탕도 없어졌으며, 매번 집에 끌려가 날 혼나게 만들었던 탁이네 오락실도 없어져버렸다. 한국화장품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용도는 세종대 기숙사로 바뀐지 오래된 듯 했고, 화양리 시장도 장날만 되면 거리를 꽉 메우던 인파는 사라졌고, 대신에 대형마트들이 들어섰으며 낡았던 시장 건물이 또한 헐리고 주상복합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아 그래, 꼭 무언가 사라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 사라지면 무언가 대신해서 그 자리에 들어서긴 했다. 양지슈퍼가 확장하고 마트가 들어서고, 건대 공터 야구장이 사라지면 백화점 아파트가 들어서고 뭐 그런식 말이지. 그러나 새로움이란 단어보다 낯설음이란 단어가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하다.
 
 가령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물론 이 이야기는 다른 어떤 나라 과거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난 비록 내가 겪은 이야기 외엔 쓰지 못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와 관련 없다.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머리가 붉은 마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심장에서 피를 조금씩 불태워야 한다. 한 남자는 그 마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자청해서 그 마녀의 주술에 걸려 매번 자신의 심장에서 피를 불태우고 고통을 선택하는 남자. 그 마녀는 그 남자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행되는 노화가 잘 막아지질 않는다는 점을 알고 그 남자에게 더욱더 강한 고통을 요구하게 되고 그 남자는 그 마녀의 요구에 따라 더욱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당연히 그 마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말야. 결말이나 이야기 진행도 막 떠오르는데 일단은 생각만 해둔다.
 마녀 머리색은 꼭 붉은 색이어야 해. '추석 마법' 글에도 대충 그런 여자가 등장했던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난 붉은 머리가 너무 좋아. 아 근데 이거 좀 내 경험담이 될 듯도 한데말야 당분간은 보류.
 
 이것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예전에 선배가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를 자신에게 넘어오게하기 위해서 몇주동안 그 여자가 좋아하는 취향을 조사해서 장미꽃 한다발에 그냥 영자신문으로 둘둘 말아 포장해서 선물하고 고백하는 것으로 마음을 얻었다던데, 나도 그랬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좀 든다. 하지만 뜨겁게 그렇게 사랑하던 그 선배의 사랑도 어떤 이유에서든 끝나고 지금은 또 다른 어떤 사람과 또 다른 사랑을 하고 있잖아?
 
 박서에 들어가서 맥주를 조금 마시고 강냉이를 조금 까먹고 소변을 보고 나오니 벽에 걸려있는 큰 화면에서 축구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저 티비는 1년 내내 축구경기를 비춰주고 있을테지? 이런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보여주는 건 축구만한 게 없을 것이다. 난 물론 축구가 싫지만 그래도 싸구려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는 것보단 낫다. 난 적어도 세상에 나오고 5년이 지나지 않은 음악은 듣질 않는다.
 난 축구를 싫어하기 떄문에 어느팀이 어느팀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흰색 바지를 입은 팀을 응원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흰 바지 팀의 경기력이 더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기대와 다르게 흰 바지 유니폼 팀은 제대로 경기를 펼쳐보지 못하고 3:0 패배. 기적은 기적이니까 기적이다.
 남은 맥주를 좀 더 마시고 소변을 좀 더 보고 다시 전화기를 만지작 거리지만 여전히 연락할 곳은 보이질 않는다. 내 이런 중랑천이니 건물이니하는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있기나 할까라는 생각과 쓴 웃음.
 
 저녁이 되니 거리로 사람이 넘치고 다들 어디론가 향한다. 바람은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모든 것이 변해버려 딱히 갈 곳이 없어진 나는 부리로 콘크리트 온기조차 느끼지 못한채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래 돌아가자.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