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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 이런 소망은 전 세계 어린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시시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그러한 욕구는 그런 시시한 여름 한철의 메뚜기와 같은 열병 따위와는 다른 강렬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열망을 가진 것은 어느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난 주위의 또래와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 난 주위와 많은 것이 달랐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사고가 정립되지 않은 나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솔직히 남들과 다르다고해서 내가 남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오히려 난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우월했다.
우리 어머니는 독일인이어서 한국인 아버지와의 혼혈인 훤칠하며 뚜렷한 이목구비의 내 외모는 주위의 짤땅만하고 못생기고 평범한 아시아 몽고리안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내 완력이나 체력은 주위의 또래보다 압도적인 편이었다. 또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성적은 항상 유지하였다. 아버지가 하는 사업으로 집도 부유하였고 소위 말하는 그래, 난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은 그런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한국이나 일본 같은 사회에서 나와 같이 무언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경외이자 곧 동시에 소외를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언제나 혼자였다.
물론 주위보다 우월한 내 스펙 때문에 사람은 언제나 바글바글했다.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 내게 다가 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혼자인 시간이 많아질수록 난 곧 여럿과 함께 무엇을 하기보다는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것을 좋아했고 이렇게 점점 혼자인 것에 익숙해진 나에게 아직 어리다는 것은 혼자라는 것의 일종의 장애물과 같았다. 그렇기에 하루라도 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했고 어렸을 때의 여러가지 소망중에 내 가장 강렬한 소원은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난 언제나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른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치기로 흉내내는 정도였지만 주로 학교의 쓰레기 같은 놈들이랑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학교에 몰래 숨어 담배를 피우곤 했다. 또 가끔 여자를 꼬셔 섹스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른의 일을 흉내낸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른의 행위와 아직 어른이 아닌 자신의 괴리는 생각보다 컸고 그 괴리를 난 참을수 없었다.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표출되어야만 했고 그 표출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싸우고 방과후에 싸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또 싸웠다. 이길 때도 있었지만 지는 때도 가끔 있었다. 그렇지만 거의 주로 일방적인 폭력일 때가 많았다.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난 모든면에서 우월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이 고등학교 졸업까지 비교적 줄곧 계속 되었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니 당연히 성적은 좋질 않았고 대학에 갈 성적은 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재수라도 해서 대학에 가길 원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대학이란 별 의미없는 샌님들의 집합소일 뿐이었다.
그 대신 위에서 말한 어른놀이를 좀 더 즐겼다. 사람을 패고 술을 마시고, 욕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섹스를 했다. 그렇게 1~2년 정도 지내고 나니 왠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가 꿈꾸며 그리던 어른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곧 내게 진짜 어른에서 부족한 무언가를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책임감이라는 것이었다.
그 뒤 난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아버지의 회사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곧 아는 사람을 통해 기무장교로 입대하였다. 군 생활 중에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았으며 전역 후에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그럭저럭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20대에 1700억이라면 분명 대단한 성공일테지.
그렇지만 어렸을 때에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말 그대로의 어른이 되었고 한국 거의 99.99%의 사람보다 우월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난 왜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