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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속 거짓말

종호에게

야가다 2020. 3. 26. 21:08

김종호 봐라.
최근에 모든게 혼란스럽다. 이 혼란스러움을 누군가에게 알릴듯한 글들은 주머니에 잔뜩 넣고 다니는데 이 글들을 보낼 날이 올지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 운이 좋은 몇개 글들을 보내질지도 모르겠지만 또 쓰잘데기 없는 낙서들을 채우고 나면 쓰레기가 될 것들이 거의 다 일 게지.
이 글도 아마 그 '거의' 중 하나가 될 꺼라고 생각한다.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2달 남짓?
물론 부대내인만큼 혈통이 있는 그따위 개가 아니라 단지 멋지게 생긴 잡견일 뿐이지만 이 개에게 왠지 시선이 떨어지질 않어.
이유야 여러가지이겠지만 아무래도 이 개는 대대장이 키우고 있는 사람만 보면 도망가는 싸가지 없는 그런개와는 달리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사이에 다가간다는 것이 내 시선을 끌더군.
처음에 이 개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했었지. 새끼에다가 북실북실한 흰털이 매력이었거든. 물론 풀어놓고 기르다보니 먼지는 많이 뒤집어 썼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네.
그 가지각색의 많은 사람들의 사랑만큼이나 이녀석을 부르는 부대내 사람들도 각양 각색이더군. 왜냐하면 내가 기르고 있었지만 난 이름을 붙히지 않았었거든.
예슬이(논스톱에 나오는 - 최근 우리 부대에서 인기지, 더구나 이 개는 암컷이었거든), 랑이, 만득이, 초복이까지.(후에 이 이름에 관한 논쟁은 간부에 의해서 끝나게 되지만)
어떤 것이든 그다지 상관없었네.
그다지 개에게 재롱을 기대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거든.
뭐 이렇든 저렇든 부대내의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녀석이 지금은 쓰레기장 옆에 개목걸이로 묶여 있는 신세가 되었네.
광견병이든 뭐든 대대장 눈에는 개가 부대내를 마음대로 활보하는게 거슬렸던게지.
뭐 지금은 부대내 구석진 곳 쓰레기 장에 묶여 있는 신세이지만 꼬박꼬박 밥은 챙겨주고 있네.
1주일에 한번은 사무실에서 잡다한 서류 정리하고 있을때 사무실 안에 잠깐 풀어주기도 하고 내심 이녀석이 도망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한다네.
하지만 이녀석은 개줄을 풀어주면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더 사람에게 엉겨 붙더군.
쓰레기장의 후미진 곳이 이녀석을 외롭게 만들었구나 싶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금 도망안가면 여름에 먹혀질 것도 모르고 사람에게 꼬리치고 있다니 한심하기도 하더군.
뭐 덕분에 이렇든 저렇든 일요일은 이녀석과 함께 지내는 날이 되고 말았어.
이 녀석이 날 따라다니든 말든 그다지 상관이 없을줄 알았는데(오히려 도망가길 바랬다네) 그게 아니더군.
주위 사람들이 이 개와 나를 닮았다고 하기 시작하는 걸쎄.
그래서 이 개의 이름이 어처구니 없게도 '승보'가 되고 말았지.
나야 개에 내 이름을 붙히든 말든 상관 없지만 이 개가 불쾌해 할까봐 적당히 군수장교가 부르는 이름인 '누리'라는 이름을 붙혀주고 명찰도 만들어줬지. 곧 이 개자식이 물어뜯어 떨어졌지만.
뭐랄까
난 이 개가 처음에 개목걸이에 쇠줄 걸던 날을 잊지 못해.
한때 자유스럽게 막사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녀석이 말야 순식간에 자유를 빼앗기니 오죽 하겠냐?
그렇다고 이 녀석에게 개줄을 시킨 대대장이 나쁘다고는 생각안해.
언젠간 조금 더 크면 개줄을 반드시 해야 했을꺼야.
필연적이지. 단지 시기의 문제일뿐.
아인슈타인대로라면 시기조차 의미 없지만.
처음에 개목걸이를 누군가 끌고 간다는 것에 대해 완강히 저항하더군. 쇠로 된 개줄을 물어 뜯기도 하고 안가겠다고 버티기도 했지.
밤새 울부짖기까지 하더군.
그래도 체념을 한건지 금방 적응을 하더군. 개줄에 말야.
지금도 가끔은 저항을 하긴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부질 없음을.
새벽 3시 20분. 한바탕 글을 써 놓으니 피곤하군.
이 글을 볼수 있게 되길 비네. 너에게도 나에게도
아멘.
2004년 2월 15일
니 친구 오승보가 썼다.
ps. 2004년 3월 4일인 지금에도 이 개는 쓰레기장 옆에 묶여 있다네. 여전히 밤에 울기도 하고.
외로움이란건 개든 사람이든 그리 쉽게 적응 되는 것이 아닌가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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