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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속 거짓말

연쇄살인

야가다 2020. 4. 24. 20:50

 막차가 지나가버리고 남은 지하철 역은 생각보다 그다지 한산하지 않았다. 물론 깨어있는 정상적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듯 했지만 비어있는 벤치에 누워있는 취객과 청소를 하는 아줌마, 굴러다니는 쓰레기는 나름대로 역을 채워주었다.
 막차를 놓쳤으니 집에 돌아가는 방법은 두가지 뿐이었다. 물론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의 여관에서 잠을 자거나 밤새 술을 마시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단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면허도 없고 막차가 끊긴 서울에서 집에 돌아가는 방법은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거나 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호기롭게 종로에서 집까지 몇시간이고 걸려 걸어가곤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랐다.
 그 때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지금은 무척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었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활동하기 불편한 것이다. 더욱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때와 지금은 나이가 달랐다.
 
 
 나이를 얻는 대신 난 많은 것을 그 대가로 치뤘다. 지금 당장 걸음을 잃었고 노래를 잃게 했으며 인연 또한 잃게 하였다. 부가적으로 얻은 것은 관절염과 아픈 어깨정도 인가?
 핸드폰은 1시를 표시하고 있었다. 바늘이 가리키는 시계에서 숫자를 표기만하는 전화까지 많은 기술의 발전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난 그 발전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태옆소리와 시계바늘을 잃은 것이 아닌가? 지금의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아이들이 아마 내 나이가 될 때면 시계가 똑딱 똑딱이라고 소리를 내는지 째깍이라고 소리를 내는지 모를지도 모른다. 결국 시계라는 물건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젠 그만 죽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 하루에 4번쯤은 매일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생각이 매일 들다보니 가끔 다른 나라의 언어로 이 말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일본어로는 '모우 시누 호오가 이이까?' 영어로는.....글쎄?
 아쉽게도 난 영어는 잘하지 못한다.
 영어뿐이 아니다. 중국어, 만다린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등..... 세상에는 많은 언어들이 있다. 그런 많은 언어로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하면 보통 그런 상념은 잊고 새로운 그 날의 삶의 이유를 찾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난 이제 쓸모없어진 시계 바늘처럼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어느정도이기까지 하냐면 난 이미 슈크림대신 마요네즈를 넣은 지극히 느끼하고 맛 없는 빵을 구워 먹어보기도 했으며 콩국수에 카레를 부어 먹어보기까지 해봤다.
 가볍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는 내게 아주 중요한 일로써 이것으로 내 꿈은 모두 이뤘고 더 이상 지긋한 이 삶을 계속해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죽기로 결심하자 난 내 생명이 한 개뿐임을 아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난 죽고 싶은 방법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일단 어렸을 때의 꿈인 손목긋기. 실제로 죽을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지만 왠지 아름답고 우아하게 죽을 수 있을듯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죽지 못하면 곤란하므로 어린나이의 사춘기 소녀 생각만큼이나 쓸데없는 이 방법은 재쳐두고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봤다.
 그 결과 가장 좋은 건 목을 메는 것일까.
 비록 목이 졸리는 순간에 오줌을 싸고 심지어 똥을 싸는 꼴사나운 모양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 결국 난 이렇게 죽지만 제군들은 내가 해보지 못한 방법을 부디 다음 사람이 실행에 옮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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