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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속 거짓말

야가다 2020. 4. 24. 20:49

 누구나 매번 어떠한 종류의 꿈이든 자주 꾸는 꿈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그런 종류의 여러 꿈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누구나의 꿈이 거의 다 그렇듯이 항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깨곤 하는데 최근 몇년간 거의 그런 꿈을 꾸지 못하다가 얼마전에 그 꿈을 꿨던 관계로 한번 그 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약 15~6년전 내가 아직 10살인 무렵 내 어머니는 문방구를 하셨다. 아무래도 박봉의 아버지 급여로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의 입원비와 생활비를 모두 얻지 못해 내린 고육지책이었으리라. 그렇게 절박한 기분으로 연 문방구이기에 어머니의 삶은 늘 고달프고 바쁜편이었다. 손님이 없는 낮에는 한가한 편이었지만 아침 7시에 가게를 열고 등교하는 학생을 상대로 물건을 팔았고 항상 밤 10시에 휴일도 없이 문을 닫고는 하셨다. 그리고 가게의 문을 닫으면 항상 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 동생의 뒷바라지며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곤 하셨다.
 거기에 아버지 또한 초등학생으로선 일어나기 힘든 새벽 6시에 일을 나갔고 밤늦게 돌아오곤 했으니 쉽게 말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항상 혼자였다. 어머니는 그 혼자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여러가지 학원에 잔뜩 보냈지만 어쨋든 이불에 누워 잘 때까지 혼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그 혼자인것이 불편하거나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비교적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남의 손에 자라왔고 혼자인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가끔 그 동생에 대한 질투나 오기가 생길때도 있었는데 이것도 아마 그런 부류가 아닌가 싶다.
 
 그 날 아침은 티없이 맑은 하늘이었지만 점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결국 하교시간이 되었을 때 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소나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꽤 많이 쏟아지는 비에 평소 같으면 그냥 비를 맞고 돌아갔을 테지만 그 날은 조금 달랐다.
 남자 선생이었던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이름도 기억안나는 담임 선생은 반 아이들을 전부 교실에 앉혀놓더니
 "오늘은 비가 너무 많이와 길이 위험하니까 부모님께서 마중나온 학생 순서대로 돌아가도록 하겠어요." 라고.
 사실 난 그냥 비를 맞고 돌아가는 편이 편했고 부모님이 절대 마중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선생에게 그냥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마 선생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듯 싶었다. 사실 집까지 초등학생의 걸음으로 40~50분이나 걸리는 꽤 먼 길이었기 때문에 선생으로선 그렇게 많은 비에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겠지.
 그렇게 비오는 교실에 삐그덕 거리는 나무 책걸상에 앉아 창밖을 보니 이미 많은 부모님들이 속속 학교 정문앞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거나 학교로 아이를 찾으러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돌아가고 결국 교실에는 나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과 선생만 남게 되었다.
 날은 꽤 어둑해 졌지만 선생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오히려 심심한 학생을 달래 주듯이 스피커가 커다란 카세트 라디오를 가져오더니 음악을 틀고 거기에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나오는 노래는 박남정이나 이지현 같은 전혀 비와 어울리지 않을법한 노래였지만 그걸로도 좋은 모양이었다. 가끔 박남정의 불시착이 지겨워지면 이상은의 담다디를 틀곤했지만 그것마저도 몇번을 듣게 되자 그해 동요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연날리기도 틀어주곤 했다.
 
 '에헤라 디야 바람분다. 연을 날려보자.'
 
 연날리기까지 모두 듣고나자 선생도 슬슬 퇴근시간이 됐는지 각자의 집에 전화를 걸어주었다. 비가 너무와 좀 데려가주셨으면 같은 내용.
 그 후 30분정도가 지나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돌아가 선생과 나만 교실에 남게되는 뭐 그런 이야기이다. 꿈에선 집에 돌아가라는 선생에 반항해, 언제까지고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지만 결국 마중오지 않는다는 그런 꿈.
 
 
 
 
 
 사실 선생이 집에 그만 돌아가라고 말을 한 그 직후에 나는 집에 돌아갔었다. 아무래도 학교보다는 비를 맞더라도 집에 있는 편이 좋은 나이이니까. 그렇게 40~50분동안 비를 맞으며 돌아가지만 집과 가게는 모두 잠겨 있었다.
 그날 동생의 수술이라 아무래도 평소보다 매우 늦게 돌아온 나를 어머니는 기다리지 못하고 동생에게 가버린 것이다.
 결국 기억이 안나지만 누군가 돌아올때까지 비에 젖은 꼴로 문앞에서 계속 기다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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