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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한재근 제거에 전력을 쏟는 사성민과 박지인에게 이 글을 바친다.
시청에 계장으로 근무하는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남한에 거주하는 한재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은 1282명에 불과하단다.
세명이서 하루에 한명씩만 면접하면 한재근의 육봉을 회칠수 있다.
-'대박청년연합'의 후리보드 중에서.
한적한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산 속, 한 사내가 울면서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다.
그 사내의 생김새로 말할 것 같으면 160정도의 왜소한 체형에 헐렁헐렁한 낡은 힙합 청바지, 그리고 빚 바랜 손목이 늘어난 듯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으며 머리엔 MLB 야구모자를 약간 걸치고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좀 우울한 인상을 풍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낡은 복장에 비해 모자는 유독 새것이어서 약간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모자의 한쪽에는 '한재근'이라고 적혀 있는것이 아무래도 이 사내의 이름 같다.
땅을 파고 있는 한재근의 뒤에는 서넷명 정도의 남자가 낄낄대며 한재근을 독촉하고 있다. 한재근은 땅을 파다가 자신을 재촉하는 소리에 삽을 내려놓고 그들 중 한명에게 가 매달린다.
"영호야... 엉엉.... 우리 이런 사이 아니었잖아.. 한번만 살려주라...응?"
영호라고 불린 사내는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더니 구둣발로 한재근의 볼을 짓이긴다.
"이런 개새끼가! 어디서!!"
한재근은 그렇게 밟히면서도 바짓가랑이는 끝까지 놓지 않는다. 아마 그것이 목숨 줄로 아는 듯 했다. 아마 그것이 썩은 동앗줄이라해도.
그렇지만 뒤의 사람들은 그렇게 자비심이 많지 않은 듯 하다. 뒤에 있던 사내들 중 한명이 뚜벅뚜벅 걸어나와 한재근의 복부를 두세번 심하게 걷어 찬다.
"켁!!"
퍽 소리와 함께 한재근은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질 못했다. 입에서는 침이, 코에서는 콧물이, 눈에서는 눈물로 금새 얼굴은 범벅이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그가 곧 압축배트로 어디든 가리지 않고 한재근을 있는 힘껏 내려치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은 곧 그를 말리기 시작한다.
"야! 그만그만! 성민아 저러다. 저 새끼 죽겠다. 그만 패고. 야 이 씨발새꺄 빨리 땅 안파?!"
성민이라 불린 남자가 몇번 더 걷어차지만 그것으로 한재근은 꿈쩍도 하질 않는다. 그냥 둥그렇게 몸을 만채 계속 흐느끼고만 있다.
한재근과 이들의 관계가 엇갈리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사실 그 일은 너무 오래되어서 그 일은 이 일과 아무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남아있는 중요한 것은 이 자가 한재근이라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바로 80년생이기도 하고 의정부에 거주하기도 하며 이름이 한재근이기 때문에 그는 땅을 파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이미 극한값과 같이 수렴해 버린지 오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재근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평소에 자주 가던 피씨방에서 매복해 있던 이들에게 잡힌 것이다.
"얘들아, 그걸로 되겠냐."
뒤에 앉아 구경하던 사람들 중 한명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일어난다. 그의 손에는 새빨갛게 페인트 칠이 된 도끼가 들려있다. 그 도끼를 쥔손은 우왁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며 팔뚝의 튀어나온 힘줄은 주변을 압도하고 있고 190에 육박하는 커다란 덩치는 160정도 왜소한 한재근의 세배는 족히 되어보인다.
한재근은 그 도끼를 보자마자 허겁지겁 일어나 다시 삽을 잡고 재빨리 땅을 파기 시작한다.
"팔게, 팔게. 파면 되잖아. 나 땅 정말 잘파. 봐 씨발 내 삽 안보이지?"
한재근은 삽으로 다시 땅을 파기 시작하지만 급한 기분에 마음만 앞서는지 삽은 좀처럼 땅에 잘 박히지 않는다.
"아니, 개새끼야 늦었어. 근데 이 씹새끼는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그리고 그 남자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한번 한숨을 크게 내쉰다. 그리곤 아무말 없이 아무 표정없이 한재근에게 걸어간다.
"알겠어. 아니, 알겠습니다. 알겠다구요. 존댓말하면 되잖아요. 엉엉. 지인형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성민 형님, 영호 형님...엉엉"
"늦었다니까."
박지인이라 불린 남자는 도끼를 양손으로 높게 들어 한번 크게 내리친다. 그 도끼는 막으려고 무심결에 손을 올린 한재근의 왼팔에 박힌다. 그러나 도끼질에 익숙치 않아 빗 맞은 탓인지 팔이 완전히 잘리지는 못하고 대롱대롱 메달려있다.
"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한재근을 발로 걷어차며 도끼를 다시 빼어 든 박지인은 혹시나 도끼의 날이 상하진 않았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한팔이 덜렁덜렁 해진 한재근은 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상관 않은 채 10여미터를 도망가다가 고꾸러져 쓰러지고 말았다.
어떤 남자가 방안의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침대는 딱딱하고 불편해 보이는 것이 침대라기보다는 도마라고 불러야 적당해 보인다. 또한 그 도마같은 침대에 네 팔다리가 모두 묶여 있지만 관찰력이 좋은 사람은 곧 그 남자의 왼팔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그냥 가져다 대어 놓았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의 머리엔 유독 새것인듯한 MLB모자가 씌여져 있는데 그 모자의 안쪽에는 한재근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아마도 이 남자의 이름인 것 같았다.
한재근이 눈을 떴을 때, 붉은 조명의 왠 정육점 같은 방안에 자신이 플라스틱으로 된 딱딱한 침대위에 묶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목 아래부분은 전부 불에 타는 듯이 뜨거워 괴로운 느낌에 견디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그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려 몸을 조금 뒤척여보려 했지만 되질 않았다.
그 뒤척임이 되지 않는 것은 팔 다리가 묶여있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었다. 마치 자신에게는 팔 다리가 원래 없었다는 듯, 아무 감각도 없고 아무런 힘도 줄 수 없었다.
그는 이상한 생각에 소리를 질렀다.
"아!. 살려......쿨럭........살려줘.......제발 누..누가....살려....줘"
오랫동안 누워있던 탓일까?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그러나 이 목소리를 누가 들은 것인지 방문이 열리고 곧 두명의 사내가 들어온다. 두명은 박지인과 사성민이었다.
"어 재근이 일어났군.. 네가 일어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
그 약간 경상도 억양의 박지인을 본 한재근의 눈빛은 곧 두려움으로 물든다. 그리고 도망치려 몸을 일으키려하지만 몸은 꿈쩍도 하질 않는다.
"그래봤자 소용없어. 아마 네 몸 목 부분 이하는 지금 전부 말을 듣지 않을껄? 뭐 어렵게 이야기하면 모를꺼고 간단히 너가 자고 있는 동안 신경을 몇개 잘라놨지."
경상도의 투박한 말로 그런 설명을 하는 동안 사성민은 수술용 흰 고무장갑을 끼고 메스를 잡고 한재근의 허벅지에 펜으로 몇개의 직선을 긋는다.
"예전부터 이게 먹고 싶었어."
그러더니 사성민은 메스를 허벅지에 푹 찍어 길게 찢는다.
"꺄아아아악!!!!!!!!!!!!!!안돼!!!!!!!!!!!!!!!!"
한재근은 그 장면을 보더니 개거품을 물고 당장 쓰러질 듯 소리를 지르지만 사성민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그리고 그 벌어진 틈에 손을 넣어 휘젓더니 살점을 하나 뽑아 올린다.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살점을 사성민은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옆에 박지인을 보며 물어본다.
"이거 어떻게 먹는건가?"
박지인은 별로 관심없다는 듯,
"나중에 내가 요리해줄께."
그리곤 나머지 하나의 허벅지에 역시 칼을 긋고는 손을 넣어 살점을 꺼낸다.
"내가 너같은 쓰레기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는 너희 모두 다 이 화살신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이 화살신경을 떼어버린 너는 그냥 이제 내게 증오할 대상일 뿐이야. 즉 자네의 존재가치는 그것으로 끝이란 말이지. 근데 왜 내가 진작에 네가 자고 있을때 꺼내지 않았냐구? 그거야 그거 나름대로 의식이 있기 때문이지. 난 언제나 이 화살신경을 꺼내 먹을 땐 양식을 제공해 준 사람에게 최소한의 감사를 표시하거든. 그렇지만 자네는 자고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감사를 표할 방법이 없지 않겠나. 그래서 어쩔수 없이 이렇게 기다려 준것이지. 보게. 이 빨간 조명도 다 너를 위한 감사 표시의 하나라고 생각해 주게. 아무래도 빨간 조명아래에서 피는 덜 자극적인 색이 아니지 않겠나? 또한 잘라진 자네의 왼팔도 친절히 주워다 이렇게 자네 옆에다 가져다 두었지. 아무래도 사람은 왼팔이 없으면 허전하기 마련이거든. 더구나 그 왼팔은 이미 자네와 몇 십년동안이나 함께 지내온 거 아닌가? 내 이런 자네에 대한 배려를 좀 알아주길 바래. 물론 한 때 너와 내가 원수처럼 지내고 있던적도 있고 물론 지금도 원수처럼 지내지만, 그런건 모두 잊어버리고 순수한 눈으로 봐 주길 바라는 건 어려운 부탁일지 알지만, 이런 내 마음을 자네 뇌속 깊히 전하기 위해 하나의 선물을 더 준비했지."
그리곤 박지인은 구석에 놓여진 오함마를 꺼내 든다. 한재근의 두눈은 이미 풀려있다.
"내 마지막 성의를 받아주길 바래."
박지인은 오함마를 머리 뒤로 힘껏 들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