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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게 될 것이라고 최초로 예상을 한 사람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학 선생이었다.
20대 중후반, 지금의 내 나이 정도로 생각되던 그 선생은 언제나 표정을 세상이 지겨워 죽겠다는 식으로 짓고 있었는데, 그런 점을 뺀다면 꽤나 단아한 얼굴에 매일입고 오는 - 비슷한 옷이 여러벌 인듯 했다.- 브라우스, 뒤로 깔끔하게 흐트러짐 없이 묶고 오는 그 머리는 그 선생을 정숙하고 단아한 한국적인 미인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 충분했다.
매일 같이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수업을 진행했지만 그 단아한 외모 때문에 그 선생은 학생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았고 그런 그 선생에게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나은 글을 쓴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는 것은 매우 기분좋은 일이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난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대학의 진학과 전공의 선택도 작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과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란 누군가 예언하는 데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글과 관계없는 진로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글쓰기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취미이든 무슨 의미에서든 글쓰기는 그 선생의 짜증내던 단아한 얼굴만큼이나 모순적으로 내 삶에 깊히 박혀있었고 그 뿌리내린 깊이는 어느정도 인지 짐작도 되지 않는 것이어서, 난 무슨 저주에 걸린 것 마냥 계속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랬다. 글은 일종의 저주와 같은 배출구였다. 난 감정표현이 굉장히 서툴러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글은 단단한 코코넛 열매의 구멍처럼 그 구멍을 통해 감정이나 의견이 듬뿍 실린 글을 흘러나오게 했다.
얼마만큼이나 흘러나오게 될 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생활속에서 계속 누군가와 대화하며 사랑하며 미워하며 기뻐하며 화내며 슬퍼하며 지내는 사람들보다는 많이 쏟아낼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글쓰기가 내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언급했듯이 글쓰기는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 에너지를 소모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로운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물론 가끔 인생에 도움이 된적도 있었다. 몇몇 호기심 많은 여자들과 스스로 공허하다고 느끼는 한가한 바보같은 여자들은 내 글을 보고 종종 나에게 관심을 갖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호기심 때문에 혹은 위안을 받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내게 접근을 했고 그들중에 일부는 종종 나와 관계를 갖곤 했지만, 대부분은 내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는 데서 실망을 하며 떠났고, 나머지 대부분은 내가 그들을 절대 사랑하지 않는데에 실망하며 떠났다. 그것도 아닌 이들은 죽거나 실종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게 친구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요구했다.
그런 관계는 내 삶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인지 난 점점 피폐해져갔고 잘 마시지 못하던 술은 매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마셔대게 되었다.
특히 얼마전에 죽은 여자가 그랬다. 그 여자는 20대 후반정도로써 직업은 호스티스였다. 즉 매일하는 일이란 처음보는 남자와 술을 마시고 시시덕거리고 돈을 받고 잠을 자는 것이었는데 이 여자 역시 다른 비 정상적인 보통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내 글을 보고 메일을 보내왔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런 식으로 메일을 보낸다는 게 조금 우스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메일을 쓰는 이유는 당신이라면 제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특별한 고민이 있다거나 하소연을 할 사람을 찾는 것도 역시 아니에요.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친한 사람에게 심지어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일은 하나쯤 가지고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오히려 처음 만나는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하는게 더 쉬울때도 있구요.
물론 저도 그런 이야기는 몇개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에게 그런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전 아직 당신 얼굴도 모르는 걸요.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요,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적어도 그 사람을 바라보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손을 맞잡고 상대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진실한 심장의 고동을 느끼면 전 그 사람이 처음보더라도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인가를 알 수 있어요.
물론 그건 제 착각일 수도 있어요. 그 과거에 그런 사람을 몇 만났는데, 그들은 제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 실증을 내거나 짜증을 내곤 했거든요. 그들이 원하는 건 대부분 제 몸 뿐이었어요.
그렇다고 그들이 싫다는 건 아니었어요. 물론 후회하지도 않아요. 그들과 있는 동안 전 지극히 정상이라고 느껴졌고 구원받았다고 느꼈거든요. 어쨋든 그들은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제 몸이 지겨워지면 당연하다는 듯 절 떠나갔고 그들이 차례차례 떠나갈 때마다 제 일부분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듯한 감각을 맛봐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감각을 잊고 다시 잃어버린 부분을 가리려 더욱 많은 남자를 만나왔지만, 결국 더 많은 자신을 잃어가기만 할 뿐이었어요.
나중엔 제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다면 어떤 남자라도 좋았어요.
대부분 그들은 어떻게하면 저와 잘 수 있을까 생각뿐이었으니까, 섹스를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제시한다면 그들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어요.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당신과 그러고 싶다는게 아니니까. 단지, 죽기전에 제가 바라는 건 제가 하는 이야기에 대꾸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뿐이니까요.
그리고 왠지 당신이라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제 생각이 느닷없고 저만의 착각이고 당신을 오해한 것일수도 있지만,
당신을 만나보고 싶어요.>
그 여자가 내게 보낸 메일의 내용은 사실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난 왠지 답장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조금 늦더라도 꾸준히 답장을 해주었고 그 여자와 난 금새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하는 일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졌던 애초의 기대와는 다르게 난 거의 대꾸를 해주지 않았고 묵묵히 술을 마실 뿐이었으며 그녀는 정말 쉬지 않고 말을 많이 했었다.
하는 일에서부터 학창시절에 최근 만나는 남자들까지 난 대부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만 주었는데 신나게 떠들다가도 갑자기 말을 멈추는 등 종잡을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다.
신나게 떠들다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은 생각보다 괴로운 것이어서 난 어떻게 해야할까 안절부절 하기도 했지만, 그런 때는 보통 그대로 헤어져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그녀는 자기가 오늘 이야기 할 내용을 미리 어느정도 생각하고 정리해 오는 것 같았고 그 분량이 끝나면 더 이상 자신이 나와 함께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한 행동을 했다.
마치 셰라자드가 왕에게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녀는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내게 이야기를 했고, 난 그녀의 목숨을 쥐고 있는 왕처럼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매일매일 들어주었다.
그렇게 다섯달 쯤이 되자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았고 마침내 내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왜 나와 섹스 안해?"
사실 당황스러울 법한 질문이었지만 별로 놀라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안다고 해서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대답이 없자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 친한 친구 중에 아빠가 자살한 애가 있어. 그 애 아빠는 사업을 하다가 망했었는데 자기이름, 부인이름, 내 친구이름까지 모든 이름으로 빚을 졌고, 사업이 실패하자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지.
그 친구는 당연히 자신의 꿈을 버릴수 밖에 없었어.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게 됐고, 빚을 갚기위해 술집에 나가다가 결국 몸까지 팔게 됐어.
난 그 애와 자주 술을 마셨었는데 그 애는 항상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고 기도를 하면서 아빠가 얼릉 죽게해달라고 했었지.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타락으로 이끈 그 사람을 말야.
그러면서 매일,매일같이 몸을 팔고 아빠를 죽으라고 저주하고 다니는 더러운 자신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매일 술만 마시면 이야기했어.
그런데 어느날 그 아빠란 사람한테 연락이 온거야. 나랑 같이 술마시던 때인데 그 딸에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자신이 죽일 놈이니까 자신을 원망하라고 했어. 그리고 너희들에게 볼 면목이 없으니 죽음으로써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했어.
그 전화를 받고 내 친구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끊어버렸어. 그리고 내게 그 전화 내용을 모두 이야기 해 줬지.
난 그 애에게 아빠를 찾으러 가지 않냐고, 지금이라면 살릴수 있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아이는 찾으러가지 않고 오히려 내게 왜 그래야 하냐고 되 물었지.
그리고 자신의 기도를 드디어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면서 술을 마셨어.
난 화가났어. 왜냐고? 난 사람은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법적으로는 그 아저씨가 죽든 말든 나와는 아무상관이 없지. 그렇지만 그 아저씨가 그것도 내 친구의 아빠가 죽는다는 것을 내버려 둔다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난 그 애를 붙잡고, 그게 사람의 도리냐고 화를 냈지.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하찮은 거냐고. 부모가 죽는다는데 모른척 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냐고.
그랬지만 그 애는 왜 참견이냐며 신경쓰지 말라고 화를 냈고, 결국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그 아저씨를 찾는 행동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난 계속 말없이 술을 마실 뿐이었다.
"사람이 윤리적으로 산다는 건 중요해. 그 윤리의 기준이란 누구에게나 다를 수도 있지만, 내 윤리적 기준에서 넌 나를 안아주고 섹스를 해야만 했어.
내 윤리적 기준이 잘못됐을수도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넌 전혀 나와는 맞지 않아. 이런 너에게 내 이야기를 해버렸다는 게 정말 혐오스러워.
너가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증명해볼까? 난 오늘 죽을꺼야. 목을 메서 비참한 모습으로, 그것도 속옷만 입은채로 데롱데롱. 아주 꼴사납겠지.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 목을 메서 죽으면 구멍이란 구멍에서 물이 다 나온다고 했어.
이렇게 흉물스럽게 죽더라도 넌 아마 날 말리지 않을꺼야. 아마 전화 한 통 없을껄? 넌 원래 그런 새끼고 아마 그게 옳다고 여길테니까!"
그렇게 헤어지고 1주일정도 그 여자에게 연락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연락을 받은 쪽은 경찰쪽이었다.
경찰은 전화로 내게 그 여자가 목을 메었고 마지막으로 그 여자와 만난 사람으로써 간단한 사정청취 같은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경찰은 그 여자가 죽은 것은 1주일 전으로 1주일동안 방에 메달려있었다고 했다. 주위에 친척이나 친구가 별로 없던 그 여자는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옆집의 항의 때문에 그 여자가 죽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여름이라 사체가 빨리 부폐한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아마 꼴사납게 오래 데롱데롱 메달려있던 것 같지만, 그녀의 바램대로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물을 쏟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거기까지 알려주진 않았다.
그리고 난 술을 마셨다.
몸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을 조금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떨어져 나간부분보다 무언가 중량감이 느껴졌다.
답답하게도.
그렇게 그 여자는 죽었고 그 여자도 모르는 새에 내게 무언가를 떠 넘긴것 같았다. 돌멩이 같이 가슴에 가라앉은 무언가. 처음엔 가라앉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