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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글을 적으며 자꾸 문단과 문단의 유기성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뭐랄까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문단과 문단이 서로 유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듯한 것만 같다. 문단에서 문장은 통일성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문단과 상관없어 보이는 것만 같다.
이런 느낌을 갖는 건 비단 최근의 일뿐만이 아니다. 과거에도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아, 한 때는 지나지게 접속어를 사용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등등등 수많은 접속어로 내 문장과 문장을 위태하게 붙잡고 있었던 적도 있었으나, 그것도 한 때 뿐이었다. 언제든지 내 문장과 단어들은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흘러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접속어 하나 없이 문장과 문단을 완성하는 김훈의 글을 읽고는 곧 글 쓰는 것을 그만뒀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찰기가 없다고 느껴진 것은 어쩌면 이야기와 문장 자체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내가 하려던 이야기가 축 늘어진 할배 좆마냥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기탱천한 알타리 무를 닮은 딱딱한 10대 좆과 같았다면, 아마 그 소재나 이야기가 가진 힘으로도 별다른 수사 없이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갈 힘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이제 그런 이야기를 만들기엔 너무 늙어버렸고 지쳐버렸다. 이젠 분노도 하지 않고, 예전만큼 사랑도하질 않으며, 모든 것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조할 뿐이었다.
예전엔 항상 무엇인가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 같다. 대상이 꼭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시궁창 같은 현실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였는데, 실상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던 것 같다. 매일 같이 접시를 닦고, 김밥을 말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고, 욕을 했으며, 저주를 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는가? 왜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라고.
하지만 실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다만 그 때는 적어도 내가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당시엔 세상은 철저한 시스템에 기반되어서 움직이는 일종의 유기체와 같은 것인 줄 알았고, 빈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짜여진대로 움직이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느끼는 점은 세상이란 생각보다 허술한 빈틈 투성이이며, 구멍 투성이에 어떻게 이런 상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가 라는 점이다. 한 때는 사람조차 내가 죽인다면, 처벌 받지 않을 것만같은 확신 같은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로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사회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었으며, 그 무엇을 깨달은 점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한참 뒤의 일이다.
난 항상 세상에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은 세상에 기준에 한참 미달인 사람이었고,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세상이 그저 나를 알아만 봐주기를 바라는 철부지였던 것이다. 점점 세상을 욕해봐야 돌아오는 것이 없음에 지쳐하고, 몸에 힘이 빠질 무렵 군대를 가고, 군대를 갔다와서는 생존을 위해 일을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일종에 세상과의 타협이었다. 어쨋든 난 세상과 척을 질 생각도 없었고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세상이 날 받아들여주지 못함에 대한 분노였지. 세상 그 자체가 밉거나 싫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떻게보면 졸업과 취업이라는 세상의 기준을 통과하고 중소기업의 박봉이지만 첫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 내 화의 불꽃은 사그라져버리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나의 존재를 누군가가 긍정해주고 받아들여주는 것, 그것 뿐이었던 것이다.
아마 글 또한 이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내 글은 솔직하지 못하다. 늘상 거짓말을 쓰고 의미를 숨기고 그러면서 이해받기를 원한다. 아마 이런 거짓말과 포장, 도망이 내 글에서 문장들 단어들 사이에 힘을 빼게 하는 원인인 것 같다. 아마도.
죽어버린 듯 축 늘어져버린 내 글들을 위해서 만번의 정권지르기의 첫번째 정권을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고 정직하게 내질러 보려고 한다.
'전 외롭구요. 사실은 인간이하 쓰레기구요. 사랑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은 섹스가 하고 싶어요.'라고
이제 9999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