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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너무 삶을 대충 사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대로 좋은 것이다. 꽃에겐 꽃 나름의 삶이 있고 잡초는 잡초 나름의 삶이 있다. 난 쓰레기 인 채로 된것이다.
며칠 째 이모의 가게는 문을 열지 않는다. 이모의 가게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하면 역시 난 곤란하다. 지금 내 머리는 지저분하게 길러 처치 곤란이었고 지금 당장 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무언가 하나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다음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목젖을 겨누는 칼날처럼 그 날카로움은 언제나 내 삶의 언저리에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머리를 자르긴 싫었다. 군에서의 2년과 이후의 몇개월은 도저히 나를 남에게 머리를 깎일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머리가 엄청길어 자다가 목을 조른다던가 하는 경지가 되면 어쩔수 없이 다른 미용실에라도 가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가능성이란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난 더 곤란해진다. 차라리 내 목을 졸라주었으면 좋으련만.
이모가 마지막으로 가게문을 연 것은 지난 토요일이었고 오늘은 목요일이다. 사실은 지난 토요일에 이미 이모님께 머리를 자르러 한번 갔었다. 오후 다섯시쯤이었지만 꽤 더웠던 걸로 기억나는데 이모님의 미용실이 집에서 꽤 먼거리에 있어 더욱 덥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근처의 공원 행락객들로 인해 짜증이 나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놈의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도무지 남을 배려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하다. 마치 이날을 위해 여지껏 고생했으니 난 마음대로 누려도 괜찮다는 표정들이다. 애새끼들부터 그렇다. 그 새끼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 아랑곳 하지 않고 빽빽 울어댄다. 거기에 부모들은 쉽게 백기를 들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보이는 애새끼들은 모두 승리의 표정이고 하나씩 손에 전리품을 들고 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싸구려 도끼. 백이면 백 다 똑같다. 도끼를 쥔 애새끼들 표정도 똑같다. 그런 애새끼를 끌고 다니는 부모 얼굴도 다 같다. 필시 그들의 손주, 그 후손의 얼굴도 다 같을테지.
이러한 짜증을 모두 견뎌야 할 정도로 머리를 자르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흔히 여자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자른다고 하던데 그건 내게도 어느정도 통용되는 말이었다.
그만큼 난 궁지에 있었고 현실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뭔가 흐름을 바꿔주길 기대했다. 아주 조금만 바뀌면 되는 거였다. 글을 쓰는 것처럼 첫문장만 나오면 나머진 어떻게 되듯이 말이다.
그런 기대감에 도착한 미용실이었는데 이모는 어디론가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40대의 나이를 무색하게 항상 빨간 머리로 염색하고 있던 이모였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머리의 색이 더 진했다. 가게문을 걸어 잠그는 이모님께 다시 문을 열어 머리를 깎아달라는 몰염치는 할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그래도 인사정도는 괜찮겠지 싶었다.
"승보야 오랫만이다. 근데 이모가 지금 어디가거든? 내일와라. 내일 잘라줄께."
사실 머리 깎아달라는 말을 반마디도 꺼내지 않았건만 이미 이모님은 내 목적을 알고 있었다. 정작 나는 내 필요할 때만 이모를 아는체 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별 수 없이 난 그대로 돌아갔다. 다음날인 일요일엔 찾아가질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러기가 싫었다. 대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마저 다 읽었다.
다음에 찾아간건 월요일의 저녁이었는데 공원의 인파가 없어 그런 시간을 택했다. 난 저녁이 좋았다. 보통 개인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모님도 늦은 시간에 열고 늦은 시간에 가게 문을 닫았는데 내가 간 그 날은 그렇지 못했다. 가게 쇼윈도 안쪽은 불이 꺼져 인기척은 보이질 않았고 문 옆에는 종교단체에선지 모를 전단지로 오늘 가게를 열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었다. 이모가 오늘 아프신가?하는 마음으로 쇼윈도 안쪽을 이리저리 기웃 거리는데 누군가 내 옆에 다가와 역시 나와 비슷하게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게 아닌가?
옆을 슬쩍 보니 왠 40대 중후반의 아저씨가 양복을 입은채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게 꼴이 영락없이 춘향이 맘 얻으러 온 이도령 같아 보였다. 역시 혼자사는 여자에겐 많으나 적으나 남자가 꼬이기 마련이다. 난 무슨일로 찾아왔나 물어보려다가 이모도 없는데 왠지 실례인거 같아 그대로 집에 돌아왔다.
사실 우리 이모는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얼굴도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고 머리도 항상 노란색 아니면 붉은색으로 염색하고 있었다. 또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 항상 인터넷 음악방송이나 라디오를 듣고 사연을 보내 당첨되기도 했다. 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보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모님이니 남자 한둘이야 꼬시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이모님께 찾아간건 수요일이었다. 이젠 더 이상 머리를 방치해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머리 때문에 인생의 새출발이 방해 된다는게 말이 되는가? 난 짜증이 났고 오늘은 반드시 자르고 말리라는 기분으로 이모님댁에 갔다. 오후 다섯시쯤에 도착하니 역시 가게는 닫혀있었다. 대신에 치워진 우편물은 이모가 적어도 오늘은 가게를 열었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역시 머리를 자르는 일이니까. 기다리는 건 자신있었다. 뭐랄까 난 시간을 의미없이 보내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한다던지 아니면 아무 생각도 안한다던지. 별 쓸모없는 재주 같지만 살아오면서 꽤나 도움 받은 재주다. 군인 시절에는 위병 근무를 설 때 주로 이용했고 입대전에는 사람을 기다릴 때 주로 사용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을 버티기로도 사용했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어느 정당한 장소에 앉거나 적당히 기댄다음 한가지의 자신만의 주제나 놀이를 생각한다. 내가 하는 건 주로 어젯밤에 읽던 책의 내용을 생각하거나 심야에 본 드라마 줄거리를 생각하는 건데 이걸로도 잘 되지 않는다면 모든 표현을 3개국어로 하려고 노력한다. 같은 표현을 다른 언어로 하는 것은 난이도도 있고 조금 고민해야 하므로 열중만 한다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곤 한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데 된다는데 있다. 흰 도화지에 검은 펜으로 무엇을 계속 그리다 보면 너무 많이 그려 도화지 자체가 아예 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하다. 이런 쓸데없는 것에 시간은 훌쩍 가주니 시간도 어지간히 할일이 없나보다.
오후 8시가 되었을 쯤 아무리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더라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려는데 예의 그 아저씨가 다시 이모의 가게쪽으로 오는게 아닌가? 난 별로 신경쓰지 않는척하며 그 아저씨를 예의 주시한다. 일단 관찰하기 적당한 거리 5~7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 이하로도 안되고 그 이상은 곤란하다. 딱 이 정도가 좋다. 그리곤 적당한 곳에 걸터 앉는다. 적당히 주변을 살펴보는 척을 한다. 마치 산책을 나오다 잠시 쉬는 사람처럼. 야간에 산책을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근처에 공원이 있어 어색하지는 않다.
그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무언가 초조한 듯 계속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계를 들여다 본 후엔 가게 안을 흘끔흘끔 훔쳐보는데 그다지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지 이내 포기하곤 한숨을 내쉬고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꺼내 입에 꼬나문다. 그리고 양복 윗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라이터가 없는 모양이었다. 될 수 있으면 내가 빌려주고 싶을 정도로 빈 담배를 문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지만 아쉽게도 난 담배를 피우진 않는다. 그 아저씨는 양복 윗주머니에서, 와이셔츠 주머니, 바지 주머니, 뒷주머니를 순서대로 차례차례 뒤지더니 이내 찾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 그리곤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아마 불 빌릴 사람을 찾는 거겠지. 난 제발 나에엔 오지 말아달라고 바라지만 그 아저씨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학생, 혹시 불 좀 빌릴 수 있을까?"
"담배 안피는데요."
가식적인 표정을 지으며 약간은 미안하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아저씨에게 나 역시 가식적인 미소를 보낸다. 이럴 때가 스스로에게 제일 혐오스럽다. 즐겁지 않은 상태에서의 미소란 중노동이고 많은 피로와 왜 그랬을까하는 자기 혐오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적어도 내겐.
이 스스로에의 혐오를 어딘가에 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 아저씨에게 말을 잇는다.
"여기 우리 이모 미용실인데 무슨 볼일 있으세요?"
우리라는 표현이 이상하다.
"아 그러니?"
그 아저씨의 표정은 대번에 밝아지더니 마침 잘 됐다는 얼굴이다.
"그럼 이것 좀 전해줄래? 중요한 건데 꼭 이번 토요일까진 전해줘야 한다."
그 아저씨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분홍 꽃 봉투를 내게 넘긴다. 유치한 새끼. 기껏해야 러브레터인가? 난 남 사랑놀음에 끼어드는 건 죽기보다 싫었지만 이모는 남이 아닌지라 일단 받아뒀다.
"네, 꼭 전해줄께요."
봉투는 생각보다 얇았다. 저 나이에 이런 유치한 봉투에 유치한 수법을 쓰다니 한심했지만 또 저게 낭만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난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 봉투를 이모님께 전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 봉투가 전해진 건 의뢰를 받은지 3일이 지난 토요일이었다. 원인이야 내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기도 하지만 이모님께서 동안 미용실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모님은 그 동안 여행을 다녀오셨다 한다. 듣기로는 가게도 확장 이전한다고 하니 서울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둘러보신 듯하다.
머리를 가 자르고 머리를 차가운 물에 감고 이모님께 그 아저씨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아는 사람인지.
"아니. 모르는데. 그런 아저씨는..."
동사가 먼저나오는 말 버릇은 이모나 나나 비슷하다.
"그래요?"
하지만 이모는 약간 들 떠 있는듯 하다. 하긴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데 싫은 사람이 있을까? 더구나 비슷한 또래의 이성이라면 더더욱.
한 3초 정도 이 편지를 이모님께 건네주어야 할지 망설였지만 내 물건도 아닌걸 이리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이모님은 편지를 받더니 역시나 기뻐한다. 40이 넘어서도 설레는 건 여전한가 보다.
문뜩 편지 내용이 궁금했다. 과연 뭐라고 써있을까? 이런 의문은 이모의 반응을 보자 더욱 증푝되고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기쁜 표정으로 편지 봉투를 뜯던 이모는 편지를 읽자마자 표정이 굳어지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멍한 얼굴이 되어 허공을 쳐다본다.
난 놀라 이모를 넘어지지 않게 부축하고 묻는다.
"이모. 왜 그래요?!"
이모는 시선을 돌려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말없이 그 편지를 내게 스윽 내민다. 난 궁금한 마음에 염치도 없이 그 편지를 받아 읽기 시작한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