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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2년전에 생각해 두었던 거다. 2년전에 이 이야기를 어느정도 생각해두고 언젠가 한번 써보자라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은 그런대로 자기 멋대로 흘러가버리곤 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쓸 건데기도 없지만 왠지 이런 걸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만 먹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난 이번에도 마찬가지여서 2년이 지난 지금에야 화석이 된 그 이야기의 뼈다귀라도 핥는 뭐 그런식이다.
2년전의 그러니까 03년 3월의 나는 신교대에 있었다. 꽤나 말을하기 싫어하는 성격의 나로서는 신교대에서 낯선 사람들과 말을 트고 지내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다. 더구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군대를 늦게가는 편이어서 다들 나보다 나이가 어렸고 그들고 그것 때문인지 나에게 쉽게 말문을 못여는 듯 했다.
그러니까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버스를 내려 신교대에 도착하면 40명정도를 한 소대로 해서 방안에 넣어주는데 방안에 들어서면 머릿속에 들어오는거라곤 비릿한 땀냄새와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신교대에서 나는 점점 더 말이 없어졌는데 나중엔 모두 내가 원래 그다지 말이 없는 성격이구나 생각하고는 날 신경쓰지 않았다. 꽤 편한일이기도 했지만 어찌보면 더욱 고립되어가기도 했다.
신교대에서 가장 처음 나눠주는 보급품은 숟가락이다. 사람이 총을 발명하기 이전보다 숟가락을 발명한게 이전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시 숟가락을 먼저준다. 숟가락을 나눠주는 방법은 조교가 검은 봉투에 숟가락이 담겨져있는 봉투를 내무실에 던져주면 번호순서대로 하나씩 가져가는데 우리 내무실은 121-160번까지 쓰던 내무실이던 관계로 159번이었던 나는 거의 마지막에 제일 형편없는 숟가락을 가질수 밖에 없었다. 물론 160번이었던 대석이도 형편없긴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가진 숟가락은 일반 식당가에서도 많이 보이는 손잡이 부분에 인삼이 그려진 그런 숟가락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거의 포크 숟가락을 가진 것에 비하면 앞이 그냥 뭉뜩한 그저 그런 물건이었다. 거기에 밥을 뜨는 머리부분 바로 아래 목부분은 여러번 휘어졌다 폈다한 흔적인지 구불구불하게 구불어져 있었고 전체적으로 색도 광택이 나지 않고 무언가 찌뿌둥해 보이는 그런 회색이었다.
하지만 난 이 숟가락이 마음에 들었다. 일단 크기가 작아 전투복 상의 속에 넣고 다니기 좋았으며 남들보다 상태가 좋치 않기는 했지만 특이한 생김새도 좋았다. 또 신교대 초반에 남들과 대화도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티비도 없이 다른 여흥이 존재하지 않던 그때 이 숟가락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기도 했다. 때문에 그 숟가락은 내게 보통의 존재가 아니었고 심지어 이름도 붙혀주었다. '유리겔라'라고.
유리겔라라는 이름은 희대의 유명 초능력자 유리겔라에서 따온 것인데 이 유리겔라의 특기가 바로 숟가락 구부리기였다. 나중에 모두 속임수로 걸리지만 어쨋든 내 구부러진 숟가락에 유리겔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나선 이 유리겔라와 함께하는 시간이 꽤나 특별해졌다.
쉽게 말해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에게 수백만 송이의 장미보다 자신의 별의 단 한송이의 장미가 소중하듯이 내게 유리겔라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지 어린왕자는 장미라서 아름다워보이고 내겐 숟가락이어서 단지 정신병자 또라이처럼 보이는 것일뿐.
뭐 어쨋든 유리겔라와 잠자는 시간을 빼곤 신교대에선 항상 함께였다. 눈바람을 맞아가며 총검술을 할때도 상의에 항상 꽂혀있었고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할때나 천막을 치고 야영을 할때도 함께였다. 늘 함께였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음성을 낸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이 유리겔라에게 말을 거는 일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유리겔라에게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았다. 외롭고 또 고립되었던 순간에 내 모든 감정을 이 숟가락에 모두 주어버린것이었다. 다시말해 이 유리겔라는 내 감정을 가지고 있는 분신이었고 난 감정을 잃어버린 껍데기 같은 것이었다고 하나?
그렇기 때문에 난 덤덤했고 유리겔라는 신교대에서 항상 슬펐고 우울했고 힘들어했다. 그래도 나는 항상 유리겔라에게 해주는 것이 없었고 그냥 매일매일 생기는 새로운 짐을 항상 떠넘길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녀석은 항상 그것을 불평불만없이 받아주었다. 불행이라면 밤에는 녀석과 함께이지 못했기 때문에 내 감정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럴때면 될수 있는대로 빨리 잠에 드려고 했었는데 그렇지 못할때는 내무실 사람들과 잠이 들때까지 밖의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렇게 그런식으로 6주가 흘러갔다. 나중엔 물론 같은 내무실 쓰는 모두와 친해지긴 했지만 유리겔라는 유리겔라였다. 신교대의 마지막날 이 유리겔라를 다시 검은 봉투에 넣어서 반납했다. 떠나보낸것이다. 이런식으로 검은봉투에 넣어져 유리겔라는 내 다음 사람의 손에 쥐어졌겠지. 지금도 잘 있으려나 유리겔라씨?
현재 시간 새벽 5시 50분, 잠결에 정신없이 쓰긴 했지만..
이제와서 왜 이런 이야기를 쓰냐라고 한다면 '잊기 싫어서'.
남들이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유리겔라씨는 당시 사람보다 더 날 위로해줬고 더 의지가 되었는걸....
어떻게 잊을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