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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하는 일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날 인도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어떠한 모험도 판타지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거기다 시간은 낮에 일하는 사람과는 다르게 밤에 일하는 사람에게 흐르기 때문에 낮 사람들의 기준으로 시간을 생각하다간 낭패를 겪기 마련이다. 가령 이런것이다. 낮 사람들은 하루에 1일이라는 시간을 소비하지만 밤 사람은 0.5일, 0.5일씩 2일에 하루를 소비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얼핏보면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사람의 인식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낮 사람과, 밤 사람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시간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낮 사람과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지만 내가 지날 때는 사람이 거의 지나가지 않는다. 단지 12시간의 차이로 난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난 한 낮의 태양이 무섭기도 하고 대체 한 낮의 거리엔 무슨일이 벌어지는 것일까하고 망상이나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한 낮의 세상이란 낮 사람이 밤을 생각하듯 내게 판타지나 공포가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밤의 고요와 적막과 은밀함을 사랑하는 내게 낮의 열정과 정열, 활기참은 고통이 된지 오래였다. 특히 여름의 경우는 더욱 더.
여름의 경우 한 낮이란 대게 나에겐 고통의 시간이다. 낮 사람들도 여름 밤에는 열대야와 싸운다지만 낮에 잠이드는 내 괴로움에 비하면 비할바가 못 될 것이다. 30도가 넘는 한 낮의 볕은 모든 걸 다 말려죽일듯이 내리쬐어 내 방을 밝히고 기온을 올린다. 거기에 더위에 커튼까지 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이불 또한 덮지 못하는 괴로움이란 겪지 않고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런 상황은 늘 내게 수면 부족을 안겨줬고 낮 사람들에게 새벽 3시에 해당되는 오후 3시에 늘 날 잠에서 깨게 만들었다. 오후 3시에 일어나 냉장고의 차가운 물을 1리터짜리 병의 반정도를 마시고 지겨운 V 재방송 드라마를 1시간 정도 봐야 겨우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내 낮의 삶은 이런 식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날도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날이었다. 그 날은 하지가 3~4일 지난 뒤였는데 낮 기온은 34~5도를 맴도는 그런 무더운 날이었다.
때문에 난 창문을 모두 열고 팬티만 입고 자고 있었다. 팬티만 입고 창문을 모두 열고 자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창문엔 검은 색 방충망이 쳐져 있었고 덕분에 가까이에서 보지 않는한 밖에서 안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 했다. 반면에 밖은 밝고 안은 어두워서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날도 역시 오후에 너무 더워 잠에서 깼는데 잠에서 덜 깨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시계를 보니 바늘은 2시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르구나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냉장고 문에 걸어가 차가운 물을 엄청나게 들이키고 티비 앞에 앉아 평소처럼 TV를 켰다. 매번 똑같은 결말을 만들어내는 재미없는 드라마를 지겹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게 아닌가? 이상함을 느껴 창문을 바라보니 왠 아줌마가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난 깜짝 놀라 허둥지둥 반바지와 티셔츠를 줏어입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그 아줌마는 밖에서 뭔가 화가 난 듯 문을 부서져라 쾅쾅 두드렸다. 난 약간 겁에 질렸다. 한 낮의 서울이란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인가?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옷을 입고 문을 열러 갔을 때 난 조금 안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기껏해야 아줌마고 난 남자아닌가? 문을 빼꼼히 열어 아줌마를 살폈다.
아줌마는 모두 두명이었다. 모두 40대 초중반의 모습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둘다 옆에는 가죽가방을 메고 있었다. 얼핏보면 비슷하게 보여 쌍둥이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한쪽이 좀 더 살이 쪘다.
"저 무슨 일이세요?"
"학생, 시간 있으면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이야기라 밖에서 하기가 좀 그렇네"
"네, 뭐 들어오세요."
한 낮에는 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어 문을 열어줬는데 열자마자 그 아줌마들은 무섭게 신을 벗어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방에 앉아 가방에서 이상한 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난 아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서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같이 옆에 앉아버렸다.
"학생, 혹시 종교 가진거 있어?"
뚱뚱한 아줌마가 묻는다.
"없는데요."
"그래? 그럼 지금 혹시 대학생?"
안 뚱뚱한 아줌마가 묻는다.
"아뇨"
"그럼 고등학생?"
이번엔 뚱뚱한 아줌마 차례다.
"아뇨. 학교 안다녀요."
"아 그럼 직장 다니는 구나."
이번엔 안 뚱뚱한 아줌마 차례다.
"아뇨 일 안해요."
"아, 그럼 취업준비 하고 있구나?"
다시 뚱뚱한 아줌마 차례다.
"아뇨."
"........"
뚱뚱한 아줌마는 무언가 조금 당황한 표정이다. 그러자 안 뚱뚱한 아줌마가 계속 말을 잇는다.
"음... 우리들은 XX교회에서 왔어요. 혹시 XX교회 알아?"
"아뇨"
"그럼 기독교나 다른 종교에는 관심있어?"
"아뇨"
"그럼 예수님은 알지?"
썅, 세상에 예수 모를 사람이 있을까?
"예"
그 아줌마들은 무언가 꼬투리를 잡았다는 표정이다. 그리곤 어느 교회의 호객꾼들이 다 그렇듯 썰을 풀기 시작한다. 예수님은 2천년전에 우리를 위해 죽었고 희생하셨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의 고마움을 알기는 커녕 잊어버렸다. 등등
이 둘은 사전에 무슨 만담 훈련이라도 받았는지 뚱뚱, 안뚱뚱 차례로 서로 치고 받고 능숙하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쏟아내는 과정에 이 둘은 화를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우는 척도 하고 난리가 아니다. 하긴 나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했겠지. 이런 관심없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조금은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이제 대충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설명이 끝나자 기독교를 믿으면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가 기도를 열심히 해 복을 받았다느니 사고를 당해도 죽지 않았다느니 심지어 성수대교에서 떨어져도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혹시 기도 열심히 해서 로또 당첨된 사람은 없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긴 모두가 로또 당첨금을 받는다면, 당첨금이 얼마 되지 않겠지. 모두가 이길수는 없다. 세상의 이치란 그런 것이다.
이런 방법에도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아줌마들은 방법을 바꾼다. 이도 저도 안통하면 협박을 하기 마련이다.
"학생,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어. 예수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땐 모든 인간을 심판하신다고 했어. 심판을 하실 땐 불로 심판을 하시고 죄를 지었는지를 떠나 하느님을 믿는가로 구원을 결정하시지. 학생, 예수님 믿지 않으면 심판의 날에 지옥가."
"아, 네. 근데 저는 학생 아니라니까요."
사실 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아줌마들의 이런 2시간에 걸친 공세에도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아줌마들도 지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제 슬슬 끝내려는 것 같았다. 사실 나도 피곤해 슬슬 끝내려던 참이었다. 아줌마들은 꺼내놓은 책들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었다.
아줌마들은 가는 마당에 그냥 몇가지 질문을 나가기전에 툭 던진다.
"그래, 학생 고향이 어딘가?"
별 시시한걸 다 묻는다 생각하지만 나가는 아줌마들을 가로막고 귀찮아 그냥 아무렇게나 이야기했다.
"글쎄요. 모르겠는데, 아주머니들 이제 제 이야기도 좀 들어주세요."
그리고 난 문을 잠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