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첩속 거짓말

교통사고

야가다 2020. 3. 26. 21:11

"게임을 만들거야."


벌써 몇번째 이 이야기를 듣는줄 모른다.
술 취한 사람중에 제일 짜증나는 타잎이 바로 이 유형이다.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또하고. 더구나 들어주지 않으면 화까지 내기 마련이다.

 

"그래그래. 어떤 게임인데?"

 

테이블 위엔 식어서 국물만 남아버린 감자탕 약간과 소줏병이 나뒹굴고 티비에선 또 어느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줏병을 들어 남은 여방울을 놈의 잔에 털어줬다. 이런 녀석이랑 이렇게까지나 마시다니. 역시 난 술을 못마신다.

 

"당연히 롤플레잉이지. 한국 사람은 그게 통한다니까"

 

'오늘 오후 7시경 양평에서 동서울로 가던 시외버스가 강변앞 4차선 도로에서 앞에서 마주오던 승합차와 정면 추돌했습니다. 이사고로..'

 

술잔을 놓았다.
물을 홀짝 조금 마셨다. 아무래도 술에 취하면 물도 넘기기 힘든법이다.

 

"롤플레잉은 아니 패키지는 이제 사양산업 아닌가?"

 

놈은 고개를 휘휘 젓는다.

 

"아냐아냐. 그래도 입소문을 타면 달라. 내가 만드는 게임은 그런것들하곤 다를꺼야. 감동이 있는 게임!... 그래. 난 그걸 해보고 싶어."

 

괜시리 바닥에 놓는 녀석의 잔에 힘이 들어간다.

 

"러브스토리. 그래. 러브스토리지!"

 

지겹다 말할 꺼면 빨리 말해버리게 하고 끝내는 편이 낫다.

 

"예를들면?"

 

"주인공은 평범한 남자야. 그리고 여주인공도 평범한 여자지. 이 둘은 뭐 평범하게 만나 사랑을 나누지. 그리고 좀 시간이 흘러 여자는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돼. 그래서 여자는 고민하지."

 

"무슨병?"

 

진부했다.

 

"암이든 뭐든 많잖아. 그래서 여자는 고민하지. 떠날 것인지 말것인지.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남자도 그 여자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돼. 그런데 그 남자는 그 여자가 자신 때문에 고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거야. 그래서 그 남자는 고민하다가 그 여자를 떠나."

 

"꼭 떠나야만 했나? 그 여자 곁에서 끝까지 있을수도 있잖아?"

 

뻘개진 놈의 얼굴이 터질듯해졌다. 소변이 마려웠다.

 

"아냐!!!남자에게도 사정이 있었다고!!! 떠나야만 하는 사정이.."

 

놈은 소줏병 빈병을 귀찮다는듯 자기 잔에 털털 털고 더이상 털어낼게 없는 소줏병은 바닥에 내려졌다. 녀석은 이야기를 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의사의 오진이었다는 거지...불치병이 아니었던 거야.."

 

유치했다. 더 이상 들어줄수가 없었다.

세상에 오진이라니. 우연의 남발아냐?!!

 

"나 화장실 좀 갔다올께."

 

"정말 슬픈이야기 아냐?."

 

주정을 하는 놈을 버려두고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봤다. 술을 마셔서인지 소변은 조금 길게 나왔다.
앞으론 놈이랑 술마시는 건 그만둬야겠다.

 

"떠날수 밖에 없었어. 그땐..."

 

"알아. 하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우린 많이 변했어. 아니 손상되었어. 너도, 나도."

 

빈 술잔엔 얼음만 달그락, 달그락거렸다.
갈증이었다. 온더락을 마신뒤의 얼음은 가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수첩속 거짓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화상  (0) 2020.03.30
지하철에서  (0) 2020.03.27
칸나  (0) 2020.03.26
진짜 강해지고 싶냐!  (0) 2020.03.26
유진에게  (0) 2020.03.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