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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예고되지 않고 언제나 불의하게 찾아온다. 사실 이것은 모든 '나쁘다' 혹은 '흉하다'라는 속성을 가진 것이 갖는 공통의 속성일 것이겠지만, 적어도 지독한 복통 같은 경우는 예고 정도는 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만화에서 본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복서 중에 어떤 복서는 머리를 맞고 케이오가 되면 천국으로 가는 기분이지만, 배를 맞고 케이오가 된다면 지옥으로 가는 기분이 든다고 했던 걸 본 적이 있다. 비록 난 복서는 아니지만 복통이라는 것은 적어도 내가 아는 고통 중에 상당히 그 통증의 강도가 높은 쪽에 속한다.
그렇다.
나는 지금 배가 몹시도 아프다. 마치 길다란 엿을 꼬이고 꼬이고 꼬다보면 꼬이다가, 끊어지듯이 내 창자도 비비꼬여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지금 나는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복통이라는 것은 비록 언제 통증이 올 것인가를 예측할 수 는 없지만, 비교적 그 원인은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그 유추를 하는 방법은 쉽다. 그저 단지 먹었던 것 중에서 복통을 유발할 만한 그럴싸 한 것을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두통이라는 것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속성들로 가득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어도 한 손가락 내외의 메뉴에서 원인을 고르면 되는 간편함이란 의외로 통증을 느끼는 와중에도 산뜻하다는 기분을 느낄 정도이다.
난 곰곰히 어제와 오늘 먹은 것의 리스트 중에서 이 복통의 원인을 제공할 만한 '용의'를 가진 것들을 추려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간밤 저녁엔 꽤 많은 것을 먹었다. 편의점에서 구입한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우유 500미리리터, 그리고 중면을 삶아 간장과 계란을 넣어만든 그냥 정체를 알수 없는 국수.
그렇지만 이들의 것에선 '용의'를 찾기 힘들었다. 샌드위치는 맛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유통기한을 확인했고 내가 만든 국수와 계란 또한 당일 구입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다. 우유 또한 먹고 배가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보통은 화장실에 두어차례 갔다오면 모두 해결되기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용의를 가진 것은 오늘 아침의 식단 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난 오늘 아침을 먹은 이후로 배가 아파 점심, 저녁을 모두 굶은 상태다.
난 화장실에 들락날락 거리며 그저 물뿐인 설사를 쏟아내면서 오늘 아침에 먹었던 것들을 중에 용의가 가장 큰 한 음식을 떠올렸다.
바로 그것은 콩 비지 찌개였다. 아마 어제 끓여 놓았던 것 같은데 날이 습하고 더웠던 탓인지 상해버렸던 듯 했다. 맛으로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복통의 원인을 꼭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이것 외에는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이런 유추로는 다음의 사건에 대해 예방의 기능을 갖지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다음에는 이런 찌개류를 먹을 때 조심하겠지만, 현재의 통증을 절대 완화시켜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난 그 통증을 미련하게도 참다 참다 결국은 구급차를 부르기로 했다.
"여보세요?"
"아, 네 여보세요? 거기 119 죠?"
"네. 맞는데요."
"저 배가 무척 아파서 그러는데요. 구급차 좀 보내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러세요?... 누가 아픈거죠?"
"네.. 제가 아픈데요."
"혼자 걸어서 병원에 가긴 힘드신가 보지요?"
"네, 뭐 그러니까 이렇게 전화했겠지요."
난 살짝 짜증이 났다.
"목소리는 그다지 나빠보이지 않는데요?"
".. ... 아 정말.... 아파죽겠다니까요,...."
이젠 살짝 애원하는 목소리
"음... 좀 곤란한데... 지금 앰뷸런스를 운전할 분들이 아마 안계실 꺼 거든요. 될 수 있으면 혼자서 병원까지 걸어가실수는 없나요? 택시를 타셔도 좋아요. 아 택시비가 없으시다면 입금해 드릴께요."
난 배가 너무 아파서 화조차 나질 않았다. 아픈 것도 억울한데 수화기 너머로 나를 놀린다는 생각이 들자 그 분함에 약간 눈물이 나오는 듯도 했다.
"아저씨.. 저 정말 아프다구요.."
그 나불대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내 나름대로의 화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자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심각함을 느꼈는지 조금 잠잠해 지는 듯 했다.
"하아...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일단 관할 소방서나 병원에 연락을 해 두긴 할게요. 아마 소방서의 앰뷸런스는 오지 않을 겁니다. 뭐 공무원이란 그런거거든요. 아마 병원에서 올 꺼에요. 뭐 오늘 올만한 병원은 그다지 큰 병원은 없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당신의 현재 입장에선 최선일 것 같군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난 전화로 고맙다는 말을 하려했지만, 상대는 그 말을 하기전에 전화를 끊어버린 듯 했다.
난 몇번 여보세요를 외친 후 수화기를 내려 놓으려는 순간, 문을 쿵쾅쿵쾅 누군가가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난 수화기를 마저 똑바로 내려놓고 '누구세요?' 라고 대답하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119 연락하셨죠? 여기 환자 있다면서요?"
난 순간적으로 내가 정신을 잃었었나 의심을 했었다. 아무리 앰뷸런스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수화기를 내려놓기 전에 도착하다니.그러나 문을 두들기는 쿵쾅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난 문에 걸린 자물쇠를 철컥철컥 풀었고, 그 자물쇠가 풀리자마자 문 건너편의 남자는 문을 벌컥 열고는 그 남자는 집 안에 매우 급하게 들어왔다.
그러나 그 급하게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면, 단지 환자가 걱정되기라서 보다는 무언가 화가 잔뜩 나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 남자는 얼굴이 씨뻘겋게 상기되어 있었으며, 이마나 코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코에선 내 얼굴에 닿을 정도로 콧바람을 씩씩 내뿜고 있었다.
"아닛!! 환자가 있다면서 이렇게 문을 늦게 열면 어떻합니까?"
그 남자가 내게 내뱉은 첫마디 였다. 물론 문 밖에서 문을 두들기며 내뱉은 말도 포함하자면야 첫마디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모습을 보며 말한 것은 그게 첫마디였다.
"그래 환자는 어딨습니까?"
그 남자는 나에 대해 문을 늦게 연 것을 책망하더니 이내 본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떠올린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집의 이곳 저곳을 들 쑤시고 다니며 환자처럼 생긴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 '용의'에서 제외되고 말이다.
"환자는... 전데요.."
나는 그 남자의 기세에 조금 눌린 데다가 배까지 아퍼, 소심하게 그저 작게 대답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남자는 내 말을 듣고는 날 위 아래로 훑고 자신이 생각했던 '위급한' 환자가 아니자 사뭇 실망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한껏 지루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대체.... 어디가 아픈거요?"
매우 바쁘고 급하게 보였던 그 남자가 의외로 갑자기 조용한 말투를 보이자 조금은 음습한 오싹함이 들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그 남자를 그냥 집 밖으로 내보냈겠지만, 지금은 너무 배가 아픈 나머지 도저히 그를 거절할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배가.....배가...... 몹시 ......아파요..."
"뭐.. 그래요? 일단 갑시다."
난생 태어나 처음 타 본 앰뷸런스는 의외로 단촐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장비는 원래 없었다는 듯이 전혀 보이질 않았으며, 심지어 간호사나 다른 의사조차도 없었다. 운전석과 뒷좌석의 칸막이도 없었으며 그 운전사가 운전을 하다가 거울을 통해 뒷좌석의 환자까지 체크하는 듯 했다. 실상은 말이 앰뷸런스지 실제로는 그저 일반 봉고차에 흰 페인트와 내부 뒷자석 시트만 치운 그런 차 같았다.
난 그 운전사의 지시대로 앰뷸런스의 뒷좌석에 누으려고 했지만 곧 차가 출발하자 도저히 흔들림과 덜컹임에 누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난 운전사에게 차의 속도를 줄여달라고 요구하려했지만, 한시라도 바삐 병원에 가는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어 딱히 부탁하진 않았다. 대신 배의 통증을 잊기 위해 그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저, 오늘 무슨 날인가요?"
난 119에 신고했을 때 그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무언가 주저하는 일을 떠올렸다.
"무슨 날이라뇨?"
"아 그냥 왠지 분위기가 조금 달라서요."
그러나 그 운전기사는 그다지 내 이야기엔 흥미가 없는 듯 했다.
"분위기라니, 평소에 앰뷸런스 많이 타요?"
"아뇨... 네....뭐 ... 그냥."
난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남자는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날이긴 날이었죠. 뭐 결국은 이렇게 나왔지만 말이에요."
"무슨 날인데요?"
난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 남자는 좀 전과 달리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지만, 차의 속도는 좀처럼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말이죠. 일반 사람들에겐 생소하겠지만, '앰뷸런스 운전자의 날'이라구요. 말 그대로 앰뷸런스 운전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그런 날이에요. 이 오늘 하루만큼은 앰뷸런스를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하루 쉬는 날이었구요. 어떻게 일반인이 생각하자면 굉장히 의아하실 꺼에요. 앰뷸런스가 쉬다니 말이죠. 그러나 이는 법적으로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업계에서는 모두가 알고 지키는 암묵적인 룰과 같은 날이라구요. 물론 병원에서도 이는 잘 따르고 있지요.
병원이나 정부에서 이런 단체 행동을 규제하지 않냐구요? 나 참 생각해보세요. 물론 규제를 하려고 시도를 했었지요. 그러나 우린 그 때마다 파업을 미끼로 정부나 병원과 교섭을 했지요. 그리고 우리는 승리해서 1년에 딱 하루, 우리만의 날을 가질수 있었다구요. 뭐 사실 앰뷸런스를 모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생각해보세요. 앰뷸런스를 모는 것은 정말로 위험하고 고난이도의 운전기술을 필요로 하는 거라구요. 또 부근의 도로 사정이나 지식도 또한 잘 알아야 하죠. 아시다시피 사고란 것은 예고되지 않고 시간 또한 엉망진창이죠. 당신만해도 그래요. 하필이면 오늘 아프다니요."
난 그저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앰뷸런스 운전사들은요. 서로 모일일이 전혀 없단 말입니다. 병원의 어떤 운전사 누군가 한명은 병원에 항시 대기하고 있지요. 전에 미리 말씀드렸지만, 이 도로 역주행조차 심심치 않게 하는 이 직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고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도 매우 적지요.
그래서 우리 앰뷸런스 운전사에 대한 대우가 매우 좋겠구나 생각하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답니다. 아시다시피 앰뷸런스 운전이라는 것은 언제나 늘 다른 시간에 일어나는 출동으로 모두가 늘 피로한 상태이므로 저희끼리 뭉칠 일이 없으니까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병원측은 항상 저희를 마음껏 이용하고 사고라도 내는 날에는 쉽게 해고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교통위반 딱지를 끊는 것도 다반사이고, 다치기라도 하는 날엔 심지어 병원에서 치료를 해주지도 않아요.
항상 그런 식으로 저희는 이용을 당할 뿐이었답니다.
근데 그런 저희에게 일종의 메시아와 같은 분이 나타난 겁니다. 어떤 앰뷸런스 운전사는 진짜로 그 분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쿠바에서 예수와 체게바라 사진을 나란히 놓듯이 그 분 사진을 보관하는 분도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한 십사오년 정도 전 쯤이었을 꺼에요. 서울 잠실 지역에 있는 무슨 병원에 - 병원 이름까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앰뷸런스 운전만 30년 이상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우리 업계사이에선 전설적인 분으로 그 분이 운전하는 앰뷸런스는 그 어떤 누가 모는 앰뷸런스와 달랐지요.
차에 흔들림이 없는 것은 기본이었고, 기분이 급한 환자를 이송해 차로에서 역주행을 하더라도, 그분의 인생에서 단 한차례의 사고도 없었던 분이시지요. 그분은 그야말로 이 업계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겁니다. 그 분이 이송한 환자도 모두 완치가 되어서 퇴원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분은 그렇게 정년을 모두 채우고 명예퇴직만을 남겨둔 그런 분이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모든 나쁜 일들이 그렇듯이 30여년 동안 무사고로 일하셨던 분이 갑자기 그렇게 병원으로부터 당하신겁니다.
사실 그 분의 잘못도 아니었어요. 그냥 그 분은 그날따라 뭐에 씌었는지 그러셨던 거에요.
그 일이란 이런 겁니다. 그 날도 또한 어느 때와 같은 평범한 날이었지요. 그 날 밤 자정쯤에 큰 교통사고가 났었나봐요. 아무래도 그 때는 연말이고 도로는 눈이와서 얼어있었고 운전자는 음주상태에 어떻게 보면 최악의 조합이 평범하게 모인 그런 사고였지요. 다치긴 아마 수십명이 다쳤나봐요. 차가 인도위로 올라 행인을 덮쳤다는 소문도 있었으니까요.
그 제가 말한 앰뷸런스 운전사 분 성함이 고복수라는 분이셨는데, 그 분은 여느 때 처럼 뒷좌석에 의사를 태우고 급하게 출발을 하셨드랬죠. 아마 그 날도 그 분이 사고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앰뷸런스 운전사였을 겁니다.
언제나처럼 그 분은 환자를 태우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차를 세우고 환자를 차에 태웠을 겁니다. 그 분이 타던 앰뷸런스 팀은 언제나 프로 같았어요. 물론 이것은 그 고복수라는 천재적인 기사분이 있었기에 가능했지요.
그렇게 언제나처럼 환자를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고복수씨는 도저히 엑셀을 밟을 수 없었더랩니다.
그러자 현장은 난리가 났죠.
그 분이 환자를 싣고 나서야 도착한 다른 앰뷸런스는 출발하지 못하고 제일 좋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고복수씨에게 막 크랙션을 울려대고 주변 사람들은 막 웅성대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근처에 있던 경찰은 창문을 쾅쾅 두들기기도 했지요. 그 고복수란 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런 그 고복수씨를 움직이게 한 것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뒷좌석에 누워있던 환자가 그 복수씨에게 뭐라고 했던 것이지요. 그 환자가 빨리 출발하라고 했는지 아니면 욕지꺼리를 해댔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고복수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곧 앰뷸런스를 출발했고, 최선을 다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안타깝게도 그 환자는 병원에 늦게 도착한 탓인지 그대로 병원에 도착하기전에 앰뷸런스 안에서 죽고 말았지요.
뭐 누가 듣기에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전문가인 저희 입장에선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관점에선 큰 문제도 맞긴 하지만요. 앰뷸런스 운전사가 환자를 태우고 아무런 이유없이 정차한 채로 움직이질 않다니요.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운전 실력을 생각한다면 큰 흠이 될 것이 없는 일이었답니다. 미리 전에 말씀드렸듯이 그 분은 다른 차량들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도착해 있었으며, 그분이 출발할 즈음에야 겨우 다른 차량이 도착했을 뿐이니까요.
그러나 병원에서는 그건 사정을 봐 줄 입장이 아니었나봐요. 아무래도 자신들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 확실한 일이었으니까요. 병원에서는 당연하게도 그 분을 해고했지요.
또 당연하게도 주변에서는 그 분의 해고에 대한 반발이 매우 심했어요. 그 고복수 씨는 30여년 무사고에 정년을 겨우 몇년 정도 남겼을 뿐이니까요. 심지어 병원의 의사들조차 고복수씨의 해고를 안타까워하고 반대를 했을 정도지요.
그러나 병원은 그런 반발을 모두 묵살해버렸어요. 왜냐하면 반발은 기껏해야 앰뷸런스 운전자 몇명, 의사 몇명정도의 소수였고, 목소리는 통일되지 않았으니까요.
간혹가다 산발적으로 반발 시위가 있긴 했지만, 모두 해고되거나 경찰이 와 영업방해 명목으로 체포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린 점점 분노를 하기 시작했지만, 복수씨는 그게 부담스러웠나봐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앰뷸런스는 병원에 도착했다. 사실 이 앰뷸런스가 병원에서 집으로 도착한 시간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오래 걸린 시간이었다.
"자, 병원에 도착했는데... 어때요? 이야기 좀 더 들어보실래요? 중요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데."
그러나 난 몹시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예상보다 늦게 도착한 앰뷸런스 때문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고, 사실 그 고복수란 개새끼가 목을 메고 뒈지던지, 배를 가르고 죽던지 전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난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힘겹게 가로 저은뒤 앰뷸런스에 내려 병원에 들어섰다.
병원은 타고 온 앰뷸런스에 비한다면 궁전과 같았다. 밖이 아무리 어두컴컴한 밤임을 감안하더라도 실내는 휘황찬란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환하고 밝았다.
난 그 운전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로 들어갔다. 응급실엔 침대가 10대정도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침대는 모두 비어있었다. 또한 응급실의 안쪽에 들어갈수록 내 옆에 날 부축하던 운전기사는 점점 부축하는 손을 풀어 서서히 내 옷을 잡더니 나중엔 무언가 두려운듯 아예 내게 메달리는 그런 형상이 되고 말았다.
"준형이!!!!!!!"
갑자기 누군가가 과연 병원에서 저렇게 큰 목소리로 누가 소리칠 수 있을까 싶은 소리에 옆의 기사는 매우 놀란 듯 눈을 심하게 좌우로 살피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 져 갔다.
아마 준형이라는 것은 이 기사의 이름인 것 같았다.
"준형이!!! 어디갔어 준형이!!!"
내 옆에서 팔을 꽉 붙잡던 그 운전기사는 저 목소리에 완강히 거부하듯이 몸사레를 치다가 그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오자 그 목소리의 방향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네!!! 선생님!!!"
"이자식!! 어디갔다 이제와?!! 또 하루종일 어디가서 야한 것이나 보고 온 것이겠지? 너 같이 게으른 놈은 그저 몽둥이로 다스리는 게 최고야. 어디 한번 맛을 보여줄까?!! 핫핫핫!!"
"자... 잠깐만요, 선생님.. 으... 응급환자가 있습니다요... 그... 그것도 배아 아픈 환자란 말예요."
"뭐...? 그런건 진작에 말했어야지!!"
그러더니 그 운전기사가 사라진 안보이는 구석사이에서 퍽퍽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비명소리가 아닌 비열한 듯한 웃음소리 뿐이었다.
"에헤헤... 에헤헤... 선생님... 어서... 어서... 환자를 진료하셔야죠... 에헤헤.."
그 퍽퍽소리는 한동안 조금 더 이어지더니 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그 소리가 나던 곳에서 나타났다. 그리곤 곧장 내게로 오더니 악수를 청하는 듯 손을 뻗었다.
"안녕하시오. 내가 이 병원 내과 원장이오. 배가 아프시다고?"
난 그 손을 잡을 기분이 아니었지만, 나를 치료할 의사에게 잘못 보일 이유 또한 없었다.
"네... 정말 이젠 죽을꺼 같아요."
"허허허, 죽을꺼 같다고 하면 쓰나? 그냥 앞으론 살꺼 같아요라고 하슈 그려. 일단 한번 저 침대에 누워봐요."
난 똑바로 가만히 누워있기도 힘들었지만, 그 의사가 시키는 대로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그 의사는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휫바람으로 부르며 청진기를 끼고 내가 누워있는 곳에 다가왔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자... 어디가 아픕니까? 여기?"
그 의사는 내 아랫배를 눌렀다.
"아...아니요.. 거긴 괜찮아요."
난 통증을 참으며 겨우 대답했다.
"그럼 여기?"
그 의사가 내 배 윗쪽을 누르자 엄청난 통증이 순간적으로 밀려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난 대답을 하는 대신 신음소리와 통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신했다.
"으으으..."
그 의사는 그런 내 반응에 뭐가 즐거운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기쁜 모습으로 청진기를 내 윗배에 대며 말을 했다.
"이거 이거 꽤나 심각한 상태로군. 어서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혹시 보호자 데려오셨수? 뭐 주위를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구만.
댁의 병은 말이유, 이거 설명하기는 참 어려운데, 간단히 말하자면 뱃속에 어떻게인지는 모르지만 돌덩이가 생긴거라우. 뭐 종양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만, 걱정은 하지 마슈. 암은 아니니까. 그냥 말대로 그냥 돌이유 돌."
난 배가 너무 아파서 혼절할 듯한 정도의 상황에서 호흡마저 곤란한 상황이므로 그것을 거절할만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난 그 의사에게 빨리 어떻게든 해 달라고 소리쳤 -던 것으로 기억한다 - 고 그 의사는 미소를 띄우며 내게 그 동안 기력이 많이 소모 되었으니, 링겔을 맞는게 좋다며 내 오른손 혈관위에 링겔을 꽂았다.
"진통제나 안정제도 같이 섞여 있으니까 통증은 금방 멎을게요."
그리곤 난 30여분 정도 더 데굴데굴 통증을 참다가 약효가 퍼진건지 점점 정신을 잃어갔다.
정신을 잃어가는 과정은 그저 오래된 영화를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해 놓은 것 같아 보였다. 모든 것이 현실감을 잃어가고, 현실감이 없던 것들은 오히려 현실감을 찾았다.
맙소사, 이런 병원에서 수술에 동의를 하다니.
난 무거워지는 눈꺼풀 사이로 그 의사를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젠 상관없겠지.
어떻게 되든 이젠 모두 귀찮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궁금했던 단 두가지는
과연 내 몸안의 돌은 어떤 모양일까? 라는 것과 그 고복수라는 운전기사는 어떻게 된 것일까? 라는 것.
아마 깨어내게 된다면 의사나 운전기사에게 물어봐야겠다. 제대로 깨어난다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