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첩속 거짓말

사마귀

야가다 2023. 4. 4. 09:04

 누군가가 내 이야기가 너무 불필요하게 장황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난 지적 받는 것은 될 수 있는대로 고치는 편인데다가 장황하게 늘어놓다보면 결국 나를 소모시키고 읽는 사람도 지친다는 생각에 다음의 이야기는 장황하게 써 두었다가 요점만 다시 간단히 써보았다.
 
 
 
 지난 달 도면을 들어 옮기다가 팔 안쪽을 종이에 베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겼으나 무엇에 감염되었는지 자리에 사마귀가 나 버렸다. 크기가 작았을 때는 감각이 없기에 칼로 스스로 도려내어 보았으나, 많은 출혈이 있은후에 그 출혈의 보람도 없이 다시 사마귀가 돋아나 버렸다. 별 수 없이 난 병원에 가서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찾은 피부과 병원은 당연하게도 그 병원도 점심시간이라 시술을 하지 않는다는 펫말이 입구에 붙어있었다.
 난 30분정도 밖을 돌아다니다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딱히 갈 곳도 없기에 들어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문을 연 순간 풍겨오는 반찬 냄새는 아직 점심시간이라는 점을 리얼하게 알게 해줬다.
 
 "무슨 일 때문에 오셨죠?"
 
 입구에 붙어있던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펫말과는 다르게 접수는 받고 있었다.
 대기실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가지런히 깨끗하게 놓인 네명정도가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핑크빛 쇼파 끝에 틀어져 있던 의학 방송만이 그 빈 공간을 메워주고 있었다.
 아마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없고 진료는 하지 않고 접수만 받는 것이겠지.
 
 접수 창구에 다가가 내 신상명세를 적은 뒤 키 작고 약간 살이 찐듯한 간호사에게 팔에 난 사마귀를 보여주며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왔노라고 이야기를 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선생님께 지금 진료를 하는지 여쭤보고 올게요."
 
 난 앉아 그 의료 방송을 시청했다. 의학방송인지 의료방송인지를 보고 있으려니 방송은 온통 그저 상품 광고 뿐이었다. 허리가 건강하시려면 무엇을 섭취해야 하고, 몸이 건강하려면 자동차 정비 받는 것 같이 정기적인 점검을.
 
 "선생님이 들어오시랍니다."
 
 아직 점심시간은 15분이나 남았다.
 
 진료실은 지극히 평범했다. 의사 선생님 뒤로 지극히 평범한 의학 서적들이 꽂혀있었으며, 오른쪽에는 의사면허, 의료업 면허들이 붙어있었고, 벽엔 흰 페인트로 얼룩하나 없는 것이 깔끔했다.
 
 그러나 그 선생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일흔은 족히 돼 보이는 그 선생은 배추같은 파마 머리를 밴드를 사용해 위로 치켜올렸으며 그 위를 흰머리를 감추려는 듯 붉은 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리고 주글주글한 얼굴 위로 붉은색 뿔테 안경을 썼는데, 흡사 무엇처럼 보였으나 본인이 자연스러우면 그만이겠지.
 
 "사마귀 때문에 오셨다구? 어디 한번 봅시다. 응. 이건 떼어내야 돼. 상처난 데 손톱으로 막 긁었구나? 그럼 손톱을 통해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때가 있어요.
 자 옆방 치료실로 가 계세요."
 
 치료실로 들어가니 간호사 한명만이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반에 조금 하체가 굵고 볼 살이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이었다.
 
 "여기에 걸터 앉으세요. 곧 선생님께서 오실거에요."
 
 난 시키는 대로 순순히 가리킨 진료침대에 걸터 앉았다.
 곧 그 빨간 배추머리를 한 의사가 들어오고 내 팔 사마귀에 주사를 놓아 부분 마취를 시켰다.
 
 "조금 따가울 거에요. 근데 얼굴에 점이 좀 많네. 점도 빼요. 코에 기름도 빼고. 그럼 얼굴은 더 손볼데 없겠네."
 
 그 의사는 자기 좋을대로 지껄이더니 인두기 같은 뜨겁게 달궈진 것으로 사마귀를 두어번 지졌다. 마른 오징어 굽는 냄새가 강하게 진동했다. 앞으로 마른 오징어는 먹지 말아야지. 그 의사는 내 감각이 없는 걸 확인하고 가위로 그 사마귀를 자르고는 다시 인두로 두어번 지지고 소독약을 바르며 붕대를 덧대는 것으로 치료를 마감했다.
 
 "점 꼭 빼세요. 싸게 해줄게."
 
 의사는 진료실로 돌아가고 함께 있던 간호사는 티슈를 몇장 뽑아 내 얼굴의 땀을 닦아줬다.
 
 "아팠어요?"
 
 난 마취 때문에 통증을 못느꼈다고 대답했다.
 
 "근데 왜 이렇게 땀을 흘려요?"
 
 아마 눈 앞에서 자신의 팔에 붙어있던 살점이 잘려나가고 불에 지지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렇게 땀을 흘릴것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겁쟁이. 그럼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죠. 어차피 통증도 감각도 없는데, 까짓거 눈 한번 감고 안보면 어때요? 당신은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일은 끝나 있을거라구요."
 
 그렇다. 아마 난 잘리거나 지지는 통증도 없이 보지 않았다면 인식조차 하지 못했겠지.
 
 "자 그럼 이제라도 눈 감아봐요. 그러면 모든 게 편해질 거에요."
 
 난 시키는대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편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땀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뒤늦게라도 신경쓰지 않으니 정말 편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눈 감은 어둠 사이로 간호사가 키스를 해왔다. 찌게 냄새가 났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지 않다보면 아마 모든게 다 끝나 있을 것이다.
 그저 다음에 점을 뽑으러 언제오지? 라는 생각만이 머리에 멤돌 뿐이었다.

'수첩속 거짓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짧은 어떤 장면  (0) 2023.04.06
버림의 용기  (0) 2023.04.04
계약  (0) 2023.03.21
  (2) 2023.01.02
중랑천  (0) 2021.12.1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