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공책을 펴 보는 것은 10년 만이다. 10년전의 K는 좋은 일, 안좋은 일, 꿈, 약속을 적어가며 이 노트에 추억으로 남겨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10년여 동안 이 다이어리를 단 한페이지도 채우질 못하다가, 오늘 페이지를 열어 글을 적는다. 이렇게 과거 다이어리에 글을 적는 것은 이 다이어리를 채우질 못하면 다른 다이어리나 노트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K 보고있나? 너가 선물했던 이 노트, 다이어리, 10년은 아니지만 대충 10년 후인 지금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K는 나와 친하게 지냈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내 글을 좋아했던 K는 내가 더 많은 글을 써내려가길 원했지만 난 더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였었고, 더 써내려갈 필요 또한 없었다. K는 날 좋아했고 나도 K를 좋아했지만, 브랜드 기성품 같은 남자를 원했고 난 그럴사한 딱지나 마크가 붙은 남자가 아니었기에 우린 그러지 못했다. 그 사건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왜 나는 되질 않는가?"
저 물음에 돈이라는 객관적 수치로 대답한다면 오히려 알기 편했다. 수치라는 것은 이해하기 편했고 알기 쉬웠다. 비교하기도 편했고 납득도 어렵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이란 것은 벌기는 어려웠지만, 이해하기는 무척 쉬운 것이었다. 쉽게 말해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수치화되지 못하는 이유로 날 거부하기도 하고 떠나가기도 했다. 혹자는 같은 이유로 날 찾아오기도 했다. 나는 오직 수치로만 너희의 호감과 사랑을 판단하는데, 너희는 오히려 내게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 했다.
따뜻함, 자상함, 의리, 사랑
만원을 넣으면 만원어치의 사랑을 바라고, 또 기대한 만큼의 사랑을 얻는다.
백만원을 넣으면 백만원어치의 사랑을 바라고, 또 기대한 만큼의 사랑을 얻는다.
10여년전의 K는 왜 이 다이어리를 내게 주며 이 안에 좋은 일, 안좋은 일, 꿈, 약속을 모두 적어 추억으로 남기라고 했을까?
그런 감정들이나 생각들은 모두 이뤄지지 않으므로 추억이라고 말했던 것일까?
K는 이렇게 내 감정을 자신이 선물해준 다이어리에 배설하기를 바라왔던 것일까?
감정을 모두 적어 추억으로 남기고 무언가 다른 내가 되길 바라왔던 것일까?
답은 알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건 K가 시키는대로 그냥 다 채워 적어내려가는 것 뿐이다.
다 채워 내려가다보면 뭔가 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
나오지 않을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