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타를 믿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생각해보면 그래도 9살까지는 반신반의였지만 믿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7살 이전의 나는 아마 산타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7살때 비록 조잡한 분장을 한 가짜 산타이지만 인형을 선물 받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난 그럭저럭 산타의 존재를 믿게 된 것으로 기억한다. 7살때 그 산타라는 놈은 내게 평소에 죽을만큼 갖고 싶던 로봇 장난감 대신 당장 쓰레기 통에 버릴만큼 시시한 곰인형을 한개도 아니고 두개나 줬었는데 당시 매일 애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던 놈이 그 로봇을 받게 되었을 때 '산타 이 자식 몹쓸놈이로군' 이라고 생각도 했었다. 물론 나중에 몇년 지나고 나서 그 곰인형이 때가 타 버리게 되었을 쯤 난 그것이 북극 산타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
산책을 하다보면 정말 놀라운 확률로 짜증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 확률은 놀랍게도 거의 100에 가까운 숫자라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그 경우 내 인내력으로써 참고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러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한번 화를 내다보면 연쇄적으로 다른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화를 일으키곤 하는데 그것은 물리적인 것으로 설명한다면 정지해 있는 물체에 힘을 가할 때 생기는 마찰력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지에 있는 물체에 힘을 가해 움직이게 할 때 최대정지 마찰력까지 비교적 많은 힘을 주어야 하지만 그 최대 정지 마찰력을 지나고 나면 움직이기 쉬운 것 같은 그런 원리. 집에 가는 길에 오늘 난 평소보다 유달리 화가 나 있다. 물론 그..
내가 스스로 자신안에 구멍이 있다고 느낀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사실 그러한 구멍을 느끼기 이전에도 그 구멍은 예전부터 존재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그 구멍 또한 다른 여타 구멍과 마찬가지로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메워져 가려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구멍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지더니 마침내는 내 본질이 그 구멍이 아닐까하는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난 그 구멍을 누군가가 메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도무지 내 안에선 내 안의 구멍을 메울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의 여자와 사귀며 그 구멍을 보여주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진지한 상담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그런 구멍을 보여줄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 매일매일 한재근 제거에 전력을 쏟는 사성민과 박지인에게 이 글을 바친다. 시청에 계장으로 근무하는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남한에 거주하는 한재근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사람은 1282명에 불과하단다. 세명이서 하루에 한명씩만 면접하면 한재근의 육봉을 회칠수 있다. -'대박청년연합'의 후리보드 중에서. 한적한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산 속, 한 사내가 울면서 열심히 삽질을 하고 있다. 그 사내의 생김새로 말할 것 같으면 160정도의 왜소한 체형에 헐렁헐렁한 낡은 힙합 청바지, 그리고 빚 바랜 손목이 늘어난 듯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으며 머리엔 MLB 야구모자를 약간 걸치고 있는 것이 전체적으로 좀 우울한 인상을 풍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낡은 복장에 비해 모자는 유독 새것이어서 약간 이질감이 느껴지..
학교에서 정정구조의 절점하중에 대한 모멘트에 대해 수업을 받고 있던 즈음에 밖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한바탕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네시 쯤이었다. 그 때 난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바로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어떻게 한번 이 여자와 엮일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그 우박소리는 날 다시 현실로 불러들여왔다. 난 우산이 없었던 것이다. 그건 아마 앞자리에 앉은 여자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사실 앞자리의 여자는 그다지 볼품 없었다. 일단 너무 말랐으며 가슴도 작았고 무엇보다 참을 수 없던 건 목이 헐렁거리는 심지어 뒤에서 브라가 비치는 흰 티 셔츠를 입고 있던 점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날 자극할 만한 무언가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는데 일단 채 두뼘도 되지 않을듯한 작은 어깨는 자신을 있..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조금 한산한 지하철의 좌석 끝에 앉은 나는 언제나처럼 휴대폰으로 간단한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2~3정거장 지났을 때 쯤이었다. 왠 여자가 내 옆자리에 앉더니 조금 지나자 흐느끼며 우는게 아닌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왠지 우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달래주고 싶었지만, 왠지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사실 귀찮기도 했기 때문에 약간 무시하는 척 외면하며 다시 게임에 몰입하려는데 그 여자는 갑자기 내 핸드폰 액정을 가리며 손을 내밀었다. 난 약간 어안이 벙벙해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그 여자는 "손수건" 이라고 말했다. 아마 손수건이라도 달라는 의미 같은데 그래도 어이없게 쳐다보자 "..
막차가 지나가버리고 남은 지하철 역은 생각보다 그다지 한산하지 않았다. 물론 깨어있는 정상적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듯 했지만 비어있는 벤치에 누워있는 취객과 청소를 하는 아줌마, 굴러다니는 쓰레기는 나름대로 역을 채워주었다. 막차를 놓쳤으니 집에 돌아가는 방법은 두가지 뿐이었다. 물론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의 여관에서 잠을 자거나 밤새 술을 마시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단 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면허도 없고 막차가 끊긴 서울에서 집에 돌아가는 방법은 택시를 타거나 걸어가거나 뿐이었다. 어렸을 때는 호기롭게 종로에서 집까지 몇시간이고 걸려 걸어가곤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랐다. 그 때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지만 지금은 무척 불편한 구두를 신고 있었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활동하기 불편한 것이다..
누구나 매번 어떠한 종류의 꿈이든 자주 꾸는 꿈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그런 종류의 여러 꿈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누구나의 꿈이 거의 다 그렇듯이 항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깨곤 하는데 최근 몇년간 거의 그런 꿈을 꾸지 못하다가 얼마전에 그 꿈을 꿨던 관계로 한번 그 꿈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약 15~6년전 내가 아직 10살인 무렵 내 어머니는 문방구를 하셨다. 아무래도 박봉의 아버지 급여로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의 입원비와 생활비를 모두 얻지 못해 내린 고육지책이었으리라. 그렇게 절박한 기분으로 연 문방구이기에 어머니의 삶은 늘 고달프고 바쁜편이었다. 손님이 없는 낮에는 한가한 편이었지만 아침 7시에 가게를 열고 등교..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머리가 아픈 것은 아마 - 아직은 국민학생일 그 무렵 - 초등학교 3~4학년이던 10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 나이 또레의 어느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여러학원에서 여러가지를 배우곤 했는데 그렇지만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거의 대부분에서 그다지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 사실 재능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은 좋은 표현이고 솔직히 말하자면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난 운동신경도 둔하고 음악적인 재능도 없어 도와 미를 구분하지 못했으며 손재주 따윈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오죽했으면 미술 선생이 미술시간에 내겐 언제나 주제없이 내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그려도 좋다고 허락을 했으며 태권도 도장의 사범은 이제 그만두는게 어떻겠냐고 직접 내게 말할 정..
새벽 2시 쯤 되었을까, J는 눈을 떠 조심스럽게 옆에 누워 있는 B가 깨어있지 않은가 확인한다. 다행스럽게도 B는 아직 자는 듯 하다. J는 B가 자는 것을 확인하자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빠져 나온다. 이불이 젖혀지는 부스럭 소리에 J는 가슴이 멎은 듯 하다. 침대의 삐끄덕 소리에 B가 몸을 뒤척였을 때는 B가 혹시 깨어나는게 아닌가 조마조마해 하기도 한다. 무사히 침대 밖으로 빠져나온 J는 방 안 구석에 서랍장으로 가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찾는게 없었는지 목표를 방 한쪽에 걸려있는 B의 옷으로 바꾼다. 그 옷을 B가 어제 입고 나갔던 옷이다. J는 그 옷을 조심스럽게 뒤져 지갑을 꺼낸다. 그리고 현금과 수표 몇장을 챙긴다. 지폐를 꺼낼 때 사각하는 소리에 맞춰 스스로 놀라 조금 멈칫하지만..